작가 영화와 장르 영화의 접점을 시도하며 한국영화의 새 영역을 개척했던 영화감독 이만희(1931~1975)가 세상을 떠난 지 올해로 30년이 되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영화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그의 삶을 기려 회고전을 열고 있다.
더불어 부산영화제는 고인의 업적을 길이 기념하기 위해 10일 오후 부산 남포동 PIFF광장에서 핸드 프린팅 행사를 가졌다. 이만희 감독의 딸인 배우 이혜영(43)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자신의 손자국을 남기게 된 것. 배우로서 한번도 핸드 프린팅을 하지 못한 이혜영에게는 지난 2월2일 서울 묘동에서 열린 단성사 재개관 기념식에서 아버지를 대신해 핸드 프린팅을 한 후 두 번째 영광이다.
“너무나 기분 좋고 큰 영예로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생전에 유언처럼 하셨던 ‘내가 너희들에게 물려줄 것은 내 이름 석자와 작품 뿐이다’라는 말씀의 가치를 이제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부산영화제는 이만희 감독의 회고전을 1회 때부터 준비했다. 그러나 대표작인 ‘만추’의 필름을 찾을 수 없어 계속 미루다가 결국 ‘만추’가 없는 가운데 현존하는 20여 편 중 ‘돌아오지 않는 해병’ ‘쇠사슬을 끊어라’ 등 10편을 골라 뒤늦게 회고전을 개최했다. .
이혜영은 이번 회고전을 통해 딸이지만 미처 몰랐던 아버지의 영화적 의미를 새삼 깨닫고 있다. “아버지는 문숙 문희 문정숙에게 이름을 지어줄 정도로 여자 배우들에게 애정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역할이 개인적으로 욕심이 날 정도로, 지금도 저런 영화가 있을까 싶게 여자의 심정을 잘 묘사했어요. 인간성과 유머가 넘쳐 나는 사나이들의 모습도 너무 좋습니다.”
44년의 짧은 생애 동안 50편을 쉴 새 없이 만든 감독이다 보니 그녀에게 아버지는 존재보다 부재(不在)로 기억된다.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남아있지 않을 정도다.
대신 그는 영화를 보면서 아버지의 체취를 느끼고 목소리를 다시 듣는 듯한 기쁨을 즐긴다. 많지 않은 추억 중에서 이혜영은 초등학교 시절 문숙과 신성일 주연의 ‘태양 닮은 소년’ 촬영 현장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를 동행했던 때를 떠올렸다. “비키니 입은 배우가 입만 웃고 배는 웃지 않는다고 날카롭게 지적하던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또렷해요.”
그녀가 중학교 입학한지 얼마되지 않아 유명을 달리한 아버지는 딸이 유명 배우로 성장할 줄 알았을까? “아마 배우가 될 줄은 아셨을 겁니다. 어렸을 때 장래 희망란에 배우라고 적었거든요. 아버지는 그것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웃기만 하셨어요.”
이혜영은 이번에 핸드 프린팅 행사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물결’ 부문 심사도 했다. 경쟁작들을 보면서 85년 ‘땡볕’으로 베를린영화제에 갔을 때 제3세계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신선한 충격을 다시 겪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TV드라마 활동만 하고 있지만, 저는 천상 영화배우 입니다. 올해는 심사위원이지만, 앞으로는 심사 대상으로 부산을 찾고 싶어요.”
부산=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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