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통합 연석회의’ 구성을 제의했다. “우리 사회의 경제ㆍ사회적 의제를 다룰 합의의 틀”로 “경제계 노동계 시민단체 종교계 농민 전문가와 정당 등이 참여해 구성”한다는 것이다.
연정 구상으로 빚어진 비생산적 논란이 곡절 끝에 잦아드는가 했더니 또 하나의 구설수에 지나지 않는 비현실적인 발상이다. 사회적 대회의체를 만들자는 제의를 국무총리의 대독연설에서 내놓는 형식의 문제도 진지한 반응을 얻기에는 적절치 않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분열과 대립, 갈등이라는 점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양극화 해소, 노사문제, 국민연금 문제 등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의제들”이라는 말도 맞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소재와 고민의 방식을 토로하는 데 까지만 그칠 뿐이다. 이를 국민적 회의체 신설로 해결해 줄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매우 타성적이고 무책임한, ‘제안을 위한 제안’으로 비치고 만다.
아마도 많은 사회 경제적 문제들은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부의 국정 능력 부족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게 일반적 시각일 것이다. 고민을 호소하기만 하는 것은 대통령과 정부의 제 할 일이 아니다.
어려운 정책 난제일수록 국민과 국회에 호소하고 설득하는 데 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성실해 보인다. 전 국민 대표가 참석하는 연석회의에서 ‘대타협’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정말로 믿는다면 그 맥 빠지는 순진함에 어이가 없다. 아니라면 정권 내에 스며있는 민중주의적 발상이 걱정스럽다.
집권자가 제 할 일에 실패하고 거대 회의체에서 거대 담론을 논의하자는 제안은 책임 전가 밖에 되지 않는다. 연정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핵심을 놔두고 엉뚱한 데서 문제를 해결해 보려던 탓에 결국 무위로 돌아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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