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층짜리 아파트가 콘크리트 쓰레기 더미로 변해버린 비극의 현장은 을씨년스러웠다. 바로 곁에는 간신히 지진을 견뎌낸 건물 2개 동이 있지만 인기척을 찾을 수 없다.
11일 오후 파키스탄의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마르갈라타워 아파트 붕괴 현장. 한때 중산층 시민들의 최신식 주거지였던 곳. 얼마 전까지도 콘크리트 더미 밑에선 신음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이제는 생명의 온기를 느끼기 어렵다. 어둠이 내려앉아도 불빛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8일 오전 파키스탄 북부 산악지대를 강타한 지진은 90km나 떨어진 이곳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고층 아파트 건물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여기서 27명이 최후를 맞았다. 아직도 차가운 건물 잔해 깊숙이 40여명이 남아있을 거라고 한다.
하루가 저물면서 구조 작업도 한풀 꺾였다. 파키스탄에서도 가장 먼저 구조 인력이 투입된 곳이지만 기적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11일 영국 구조팀이 마르갈라타워 현장에서 매몰된 지 80시간 만에 75세의 파키스탄 노파와 그의 딸(55)을 구했다. 앞서는 엄마와 함께 아이가 구조되기도 했다.
인구 70만 명의 이슬라마바드는 벌써 지진 참사의 비극을 잊은 듯 했다. 시민들은 지진이 일어난 토요일 이전의 일상으로 되돌아간 모습이다. 지진 피해 구호를 위해 외국 구호단체 직원들이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하면서 호텔 등은 아이러니컬하게도 특수를 누리고 있기도 하다.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지방 관리들은 사망자가 4만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샤우카트 아지즈 파키스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재까지 사망자 2만3,000명, 부상자 5만1,000명을 확인했다”고 했지만 “더 늘어날 것 같다”고 밝혔다.
이슬람구호단체들은 사망자가 8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집을 잃고 거리로 나앉은 이재민 250만 명은 당장 먹을 것을 구할 길이 없이 굶주림과 추위와 싸우며 노숙하며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이슬라마바드에서 멀리 떨어진, 최대 피해지역 무자파라바드와 발라코트에도 10일 구조인력과 장비, 구호품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미국 일본 영국 등 각국에서 온 구조 요원들이 한 데 뒤섞여 땀을 흘리고 있다.
학교 3곳이 무너져 어린 학생 수 백명이 한꺼번에 매몰된 발라코트시에는 프랑스에서 온 구조팀과 군인들이 들어왔다. 구조현장에는 중장비를 갖춘 구조요원들과 맨손으로 달려든 주민들이 뒤엉켜있다.
이날 하루 여성 4명과 노인, 아이 등 6명이 구출됐다. 구조 이틀째에도 학교 터에서 어린 학생 5명이 목숨을 구했다. 민영방송인 지오TV는 한 학교 붕괴 현장에서 학생 40명이 무사히 구조됐다고 전했다. 구조팀이 학생 30명이 살아있는 교실에 접근해 빵과 음료수를 전달했다는 소문도 퍼져나갔다.
왜 더 빨리 구조팀을 보내주지 못했는지 무기력한 정부에 대한 원성도 높다. 한 주민은 “지진이 일어난 지 사흘이 지나도록 아이들 수백명이 죽었어도 우리는 시신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도대체 나랏돈을 70%나 쓰고 있는 군대는 뭐하고 있는 거냐”고 성토했다.
무자파라바드에도 비상식량과 의약품을 실은 구호트럭이 도착했으나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역부족이다. 도시 90%가 파괴된 이 도시는 완전히 무법지대로 바뀌었다. 구호가 늦어지면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주민들이 밀가루 등 식량을 구하려고 상점을 털고 있지만, 이를 막는 경찰은 시내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슬라마바드=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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