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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여보, 밤 주우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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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여보, 밤 주우러 가자

입력
2005.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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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째 아내는 자꾸 밤을 주우러 가자고 한다. 시간이 안 된다고 하니까 그럼 혼자서라도 시골집에 내려가 밤을 주워 오겠다고 한다. 시골집 밤나무 산엔 아마 줍지 않은 밤들이 새빨갛게 떨어져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가을이면 우리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밤나무 산으로 가 간밤에 떨어진 밤부터 한 바구니씩 주워놓고 학교에 갔다. 우리 스스로 알아서 일찍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른 새벽에 어머니가 우리를 깨운다.

학교에 다녀온 다음에도 우리는 다시 저마다 바구니를 들고 밤나무 산으로 가 밤을 주워오고 또 지킨다. 그 밤나무 산은 산 몇 개 너머 마을에까지도 널리 알려져 사람들이 몰래 들어와 밤을 주워가기 때문이었다.

그때만 해도 밤이 참 귀했다. 모든 물건값의 기본이었던 쌀 한 말 값보다 밤 한 말 값이 더 비싸고말고 였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턴가 미처 줍지 못한 밤들이 그냥 그대로 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굵은 말밤도 있지만 대부분 알이 잔 토종밤이라 이젠 시장에 내놓아도 찾는 사람이 없다. 우리 형제만, 또 우리집에 시집온 어머니의 며느리들만 추석 때 성묫길에 보았던 그 밤을 귀하게 여긴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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