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선거가 보름 남짓 남았을 이 맘 때쯤 온 거리는 현수막으로 뒤덮이기 마련이다. 공천 단계에서부터 내걸리기 시작하는 현수막은 곧 선거구 요소 요소를 경쟁적으로 차지해 들어간다.
가히 현수막 물결, 그 것도 모자라 공해 수준으로 치닫기 십상이다. ‘축, 000후보 △△구 XX당 공천 획득’_. 가장 흔한 현수막 중 하나였다. 이렇게 공천부터 요란스레 알리는 것은 ‘예선’의 경쟁이 그만큼 사활적이기 때문이다.
■선거 공천은 본인만이 아니라 당으로서도 사활적인 과정이다. 주요 전략지역에는 당의 지원도 물밀 듯 제공된다. 지도부의 지원 방문은 물론 자금지원도 거의 ‘살포’ 수준인 경우가 허다했다. 이렇다 보니 선거에서 떨어져도 공천으로 선거를 치르고 나면 당이 준 자금만으로도 한 밑천 챙기는 일이 적지 않았다.
“내 선거구가 당이 정한 A급 전략 지역이었거든. 투표가 임박해서도 백중세를 면치 못하니까 선거 이틀 전 당에서 실탄으로 쓰라고 몇 억이 입금됐어. 그런데 상대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막바지에 그 돈을 돌릴 수가 있어야지. 그대로 지고 말았지. 그래도 돈은 그대로 남았어.”
■13대 총선 당시 수도권에서 낙선한 한 민정당 후보의 후일담이다. 액수의 규모야 비교가 안 됐지만 야당이라고 행태는 다르지 않았다. 통일민주당이 민정당 허삼수 후보를 표적 삼아 노무현 후보를 전략 공천했던 부산 동구는 당시로서는 선명야당과 거대여당 간 정치 상징이 걸린 전장이었다.
무명의 한 지방변호사를 ‘자객’으로 발탁한 김영삼 민주당 총재는 상도동 자택으로 불러 올린 노 후보에게 선거 준비를 하라며 거액의 봉투를 직접 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 후보는 전력투구했고, 오늘 날 대통령의 밑거름이 그 선거였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10ㆍ26 재선거가 다가오니 옛날 선거 풍경들이 여러 가지로 생각난다. 물론 요즘 선거야 과거와는 턱도 없이 다르다. 그러나 공천 탈락에 반발해 무소속으로 나서는 식의 공천 잡음 등 변하지 않는 풍속도 한 둘이 아니다. 공천은 유권자에게 정당의 정체성을 말하는 공약과도 같다.
별다른 설명도 명분도 없이 주류 실세라고 해서 쉽사리 공천이 돌아가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번 재선거는 한나라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상황. ‘깃발만 꽂아도 당선’인 지역이라고 해서 ‘안하무인’식의 공천은 꼴불견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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