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은 임기 짧아 올 투쟁 "사실살 끝"
민주노총이 11일 일단 이수호 위원장 체제를 유지하되 차기 집행부 선거를 1년 앞당겨 내년 초 실시키로 한 것은 비리 사건에 대한 국민적 비판을 수용하는 동시에 지도부 부재에 따른 조직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이 위원장의 내년 초 퇴진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스스로 밝힌 대로 강승규 전 수석부위원장의 금품수수에 따른 도의적 책임을 지기 위한 것이다.
거듭된 노조 비리에 대한 여론 악화를 그냥 두고 본 채 땜질식으로 넘어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또 이 이면에는 한국노총 지도부와의 차별화 전략도 숨어 있다. 한국노총은 5월 권오만 전 사무총장의 비리 혐의가 드러나자 대대적인 조직 혁신을 선언했을 뿐 위원장을 포함한 지도부의 직무정지나 사퇴 등 ‘결단’은 없었다.
이런 의미에서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한 위원장 직무대행 체제가 바람직하다는 의견이 부상했지만 민주노총은 하반기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관련 법안과 노사관계 법ㆍ제도 선진화 방안(노사관계 로드맵) 처리과정에서 조직을 일사불란하게 운용할 수 없다고 판단해 지도부 교체는 내년 초로 미루게 됐다.
민주노총은 조직을 추스르기 위해 향후 대정부 투쟁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이날 이 위원장이 강 전 수석부위원장 사건과 관련해 정부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나타낸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노총 역시 5월 권 전 사무총장 비리 사건 이후 김대환 노동부 장관 퇴진을 본격 거론하며 강경투쟁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그러나 현 집행부의 임기가 불과 3개월 밖에 남지 않아 실질적인 주도권을 행사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그만둘 위원장을 믿고 투쟁에 따라올 노조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하반기 투쟁은 사실상 물 건너 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차기 위원장 선거를 앞두고 계파간 치열한 세력 다툼도 예상된다. 노ㆍ사ㆍ정 대화를 인정하고 있는 이 위원장은 온건파인 국민파로 분류된다.
이 위원장이 차기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가운데 국민파 내에서 뚜렷한 차기 후보가 없는 상황이다. 반면 중도 좌파 성향의 중앙파와 노ㆍ사ㆍ정 대화를 거부하는 초강경세력인 현장파는 차기 집행부 장악을 위해 벌써부터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앙파인 공공연맹 양경규 위원장과 현장파의 유덕상 전 수석부위원장이 일찌감치 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노동계의 한 인사는 “민주노총 현 집행부의 불명예 퇴진에 이어 차기 선거에서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을 경우 앞으로 노사 및 노정 관계는 더욱 경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두영 기자 dysong@hk.co.kr
■ 이수호 위원장 문답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11일 서울 영등포2가 민주노총 본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는 현재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해 비리 혐의로 타격을 줘 비정규직 관련 법안과 노사관계 법ㆍ제도 선진화방안(노사관계 로드맵) 등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려 한다”며 “지도부의 공백과 이에 따른 혼란은 전체 노동계의 무장해제 상태를 불러와 정부의 일방적인 법 처리에 날개를 달아주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_집행부 즉각 사퇴는 검토하지 않았나.
“즉각 총사퇴는 문제가 있다. (강 전 수석부위원장의) 개인 비리는 위원장으로서 나 혼자 책임질 사항이다. 그러나 집행부 전체 임기를 1년 단축했기 때문에 사실상 총사퇴다.”
_조기선거로 인한 혼란은 없겠는가.
“하반기 투쟁 내용은 (선거에 좌우되는) 그런 성격이 아니다. 우리는 투쟁으로 평가 받는 집단이다. 총파업 결정은 이미 대의원대회에서 만장일치로 했다. 또한 투쟁을 중요시하는 민주노총 분위기상 선거를 통해 분명하고 적극적인 투쟁노선을 걷게 될 것이다.”
_투쟁이 안 끝나면 총사퇴도 철회하나.
“그런 일은 없다.”
_비리 청산작업을 하겠다고 했는데 그 의미는.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 채용비리 후 혁신과제를 설정해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한 징계위원회를 구성해 그 동안 관행적으로 답습하던 것들까지 모두 혁파해 나갈 계획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k.co.kr
■ 환노위 국감/ 여야, 양대노총 위원장 질타
11일 국회 환노위 국감에서 이수호 민주노총,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연신 고개를 숙여야 했다. 당초 두 위원장은 국제노동기구(ILO) 아시아ㆍ태평양지역 총회의 부산개최 무산에 대한 증인으로 출석했으나, 여야 의원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최근 노동계 비리를 질타했다.
민노당 단병호 의원은 “노동운동은 도덕성이 생명이며 그것이 훼손당하면 어떤 정당한 요구도 훼손될 수 밖에 없다”며 “차제에 강도 높은 내부개혁을 통해 불미스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노동계 비리에 대해 이래선 안 된다는 국민적 여론이 일고 있다”며 “이제 노총도 외부 감사를 통한 회계투명성 확보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 의원은 또 “5년간 양 노총에 대한 국가보조금이 500억원이 넘었다”며 “세금이 들어가는 만큼 공영성 강화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이수호 위원장은 “잇따른 비리에 죄송할 따름”이라며 “잘못을 스스로 걸러내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자정과 내부혁신을 통해 거듭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외부 회계감사에 대해 두 위원장은 공히 “최근 비리는 회계 절차의 비리가 아니고 개인적 비리”라며 “외부 규제를 위한 법 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반대했다.
최근 경색된 노정(勞政)관계는 정부 잘못 뿐 아니라 노동계 때문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열린우리당 이목희 의원은 “최근 노동운동은 비탈에 서 있는 것 같다”며 “내부를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같은 당 우원식 의원도 “노동운동에 브레이크가 없다”며 “지나치게 강경하게 조직을 몰고 가려는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은 “시대흐름을 읽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위원장은 김대환 노동부장관에 대해서는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이용득 위원장은 “노동계를 이렇게 무시하는 장관은 처음이다”며 “과대망상증에 걸린 분”이라고 말했다. 이수호 위원장도 “이 자리에서 장관의 퇴진을 요구한다”고 했다. 이에 김 장관은 “단호히 거절하겠다”고 일축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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