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지금’ 이야기를 잠깐만 하자. 경북 북부지방인 예천. 산골인데다 농사가 주업이다보니 공기 맑고, 물이 달아(醴泉) 장수촌이 됐다. 노인네가 많은 곳이라지만 그래도 젊은이들은 있다. 그리고 어느 농촌이나 비슷하지만 그들에게 시집 오겠다는 여자는 없다.
보다못해 급기야 군수가 직접 나섰다. 지난 6월 35세 이상 노총각 16명을 이끌고 베트남으로 직접 날아가 신부를 데리고 왔다. 지금까지 베트남 필리핀 등 외국인 여자와 결혼한 사람은 105명,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115명이나 된다.
그들을 위해 기초한글교육, 요리강습 등의 프로그램과 자매결연도 준비하고 있는 김수남 군수는 “그들은 가족이며,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이라고 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14일 상영할 ‘나의 결혼원정기’(감독 황병국) 도 같은 소재의 영화로 촬영을 예천에서 했다.
짤막한 한 TV 프로그램이 주말마다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다.
거창한 드라마도,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다. ‘눈물’의 주인공은 아이러니하게도 몇 년 전부터 고향 가면 이따금 봐도 무심히 지나쳤던, 얼굴이 아주 조금더 검은 꼬맹이들이다. 토요일 저녁 MBC ‘느낌표’의 ‘집으로’ 코너에서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필리핀으로 가는 초등학교 1학년 은진이는 여느 아이들과 다른 게 없다. 까불고, 노래하고, 장난끼 가득하다. 그런 아이가 서럽게 운다.
“얼굴이 하얘졌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한국사람이 돼서 나를 낳아주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면서. 2주 전 외가가 있는 인도네시아로 간 문영인가 하는 아이도 비슷한 말을 하며 울었다. 굳이 목소리 높여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 아이들의 눈물이 어디서 나왔는지 안다.
‘집으로’에는 또 하나의 눈물이 있다. 이역만리 외가를 찾은 아이와 외할아버지의 눈물. 처음 보는 외손자 외손녀를 끌어안고 말없이 울기만 하는 노인과, 그토록 싫은 검은 피부이건만 망설임 없이 달려드는 아이에게 가족의 소중함 외에 다른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흰 머리, 앙상한 맨발에 주름투성이인 가난한 할아버지와 처음 보는 할아버지 얼굴에 볼을 비벼대는 아이가 편견과 가름에 갇힌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10년 만에 외국 여자와 결혼한 남자가 2만명을 넘어섰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을 포함해 6만명의 혼혈인이 살며,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지금도 거리 곳곳에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 란 현수막이 내걸려 있는 나라.
때문에 이제는 좋든 싫든 그들을 가족, 이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방송이 그 모든 것을 다 책임질 수는 없다. 일주일에 아이 하나 외가에 데려간다고 현실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다.
다만 몇 명의 시청자라도 그들의 눈물을 보고 “그 아이들 가슴을 멍들게 해서는 안되겠다” 든가 “그들도 우리이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해 준다면 시청률을 위해 그들을 ‘오락화’ 했더라도 충분히 값지다. 공영방송의 역할이란 이런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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