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1992: 이하 ‘모든 사라지는 것’)는 고정희(1948~1991)의 1주기에 맞춰 나온 유고 시집이다. 그렇다고 이 시집의 체제가 출판사의 재량에 따라 짜여진 것은 아니다.
지리산 뱀사골의 급류에 휩쓸려 생을 마감하기 일주일 전쯤, 시인은 출판사 편집자를 찾아가 자신에게 정리된 신작 시집 원고가 있다고 귀띔했다고 한다. ‘모든 사라지는 것’은 시인의 사후에 경기도 안산 집에서 찾아낸 이 원고를 거의 고스란히 활자화한 것이다.
고정희는 생전에 열 권의 시집을 냈다. 첫 시집 ‘누가 홀로 술틀을 밟고 있는가’를 낸 것이 31세 때인 1979년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리 길지 않은 문학 이력을 통해 도드라진 다산성을 드러낸 샘이다. 좋은 것은 흔치 않은 법이다. 고정희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그의 펜끝에서 쏟아져 나온 수많은 시행이 모조리 미적으로 탐스럽지는 않았다.
더러는, 말수를 얼마쯤 줄이고 언어를 조금만 더 벼리며 ‘시인됨’에 대한 욕심을 부렸으면 고정희 문학이 한결 돋보였을지 모른다는 아쉬움이 고개를 쳐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아쉬움은 또 얼마나 부질없는가. 그가 이미 죽은 시인이어서만이 아니라, 생전의 고정희 자신이 문학을 미적 허영의 전시장으로는 도무지 여기지 않았던 바에야 말이다.
고정희에게 시는 무기였다. 해방을 위한 무기였다. 그 해방은 민족해방이었고, 민중해방이었고, 특히 여성해방이었다. 박남수와 김춘수의 영향 아래 시를 쓰기 시작한 시인이 문학을 (넓은 의미의) 이념 속에 용해시킨 것은 별난 일이다. 이것은 고정희의 시가 아름다움을 경멸했다는 뜻이 아니다.
고정희의 적잖은 시들은 아름다움으로도 뛰어나다. 그가 문학을 이념 속에 용해시켰다는 것은 그저, 그의 내면 속에서, 이념에 대한 성심이 아름다움에 대한 성심을 자주 이겨냈다는 뜻일 뿐이다. 아니, 이 진술을 이렇게 고치는 것이 좋겠다. 고정희에게는, 차라리, 해방의 이념이 곧 아름다움이었다고 말이다.
이 내용주의자에게 형식에 대한 모색의 열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판소리나 마당굿은 고정희의 눈에 그 해방 이념에 어울리는 그릇으로 비쳤던 듯하다. 그는 이 전통 연행 장르를 문학적으로 차용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내용으로서의 해방 이념과 형식으로서의 전통주의는 ‘모든 사라지는 것’에서도 여전하니, 각 부의 표제를 이루는 ‘밥과 자본주의’ ‘외경 읽기’, ‘통일굿마당’에서 그 지향이 이미 또렷하다.
은퇴한 매춘여성을 화자로 내세운 ‘몸바쳐 밥을 사는 사람 내력 한마당’은, 서사성이 다소 무르기는 하지만, 김지하가 바탕을 마련한 담시의 계보를 잇고 있다.
고정희의 마음은 서울 수유리에 둥지를 튼 듯하다. 수유리는 그가 다닌 한국신학대학과 4.19묘지의 공간이다. 고정희의 시세계는 압도적으로 기독교적이지만, 그의 기독교는 독차지의 종교가 아니라 나눔의 종교였고, 제1세계의 종교가 아니라 (제1세계까지를 감싸안는) 제3세계의 종교였으며, 남성의 종교가 아니라 (남성까지를 보듬어내는) 여성의 종교였다.
고정희의 많은 기독교 시가 그 흔한 예배문학으로 굴러 떨어지지 않고 인간해방문학으로, 저항의 문학으로 고양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신학대학(자체가 민중신학의 한 요람이기도 했지만) 근처에 4.19묘지가 있었다는 사실과 조금은 줄이 닿아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의 성경은 ‘외경’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성경 구절들을 군데군데 패러디한 그의 시 속에서, 인간의 평등과 해방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심지어 교회나 하느님까지도 신랄한 풍자와 분노의 표적이 된다. 주류 기독교 신자는 이 기독교 시인이 드러내는 신앙의 불온함을 참아내기 힘들 것이다.
고정희의 예수는 서울 강남의 부자 마을에서 쫓겨난 뒤 “강남아, 가파르나움아/ 가혹하고 고통스런 환란의 시대에/ 내 백성의 피땀으로 호화스럼을 누린 자는 다/ 무서운 폐허에 떨어질 것이다!/ 정녕 나는 너를 어쩌란 말이냐/ 내 속에 네가 있고 네 땅에 내 백성이 거하지 않는구나”라며 분노와 탄식을 내뱉다가도, “당신은 타락을 징벌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오셨기에/ 그 오심 속에 이미 척도가 있습니다/ 애초부터 불완전한 인간에게 완전을 요구하지 마시고/ 완전해지려는 마음을 받으소서(‘구정동아 구정동아’)라는 어느 가난한 여자의 변론에 마음을 돌리는 사랑의 메시아다.
이 시집의 한 발칙한 화자는 “아아 살인병기를 자처하는 다국적군이 실로 참혹하게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땅을 피바다로 싹쓸이할 때도 당신의 말씀은 침묵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미국은 새로운 전쟁시대의 첫 승리자이다’ 부시가 오만불손하게 음성을 높일 때, 그리고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스무 번씩 기립박수를 칠 때도 당신은 온전히 침묵했”다고 하느님을 힐난한 뒤, “당신은 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리고 당탔?교회의 창고부터 열어야”(‘행방불명되신 하느님께 보내는 출소장’) 한다고 다그친다.
왜냐하면 “이 곤궁한 시대에/ 교회는 실로 너무 많은 것을 가졌”기 때문이다. “교회는 너무 많은 재물을 가졌고 너무 많은 거짓을 가졌고/ 너무 많은 보태기 십자가를 가졌고”, “너무 많은 파당과 너무 많은 미움과 너무 많은 철조망과 벽을 가졌”기 때문이다.
위에 인용한 시에서 전쟁은 제1차 걸프전이고, 부시는 지금 미국 대통령의 아버지를 가리킨다. 시인이 지리산에서 살아남아 아들 부시의 이라크 침략을 볼 수 있었다면, 그는 뭐라 말했을까? 이 시집이 나오고 흐른 10여 년 동안 고정희의 하느님은 제 자식들로부터 한결 더 멀어진 듯하다.
시가 고정희에게 해방의 무기였다면, 그 해방의 전략은 사랑이었다. 그러니까, 고정희에게 시는, 우리가 다음주에 살필 김남주의 한 시집 제목대로, ‘사랑의 무기’이기도 했던 셈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종기를 모른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뇌졸중을 모른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자궁암을 모른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섬을 모른다 사랑하지 않으면 나는 너의 풀잎을 모른다”(‘눈물샘에 관한 몇가지 고백’). 그리고 고정희에게 사랑의 실천 전술은 밥의 나눔이었다.
고정희 생각에 “밥은 다만 나누는 힘이다”(‘아시아의 밥상문화’). “밥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란다/ 네가 밥을 함께 나눌 친구를 갖지 못했다면/ 누군가는 지금 밥그릇이 비어있단다/ 네가 함께 웃을 친구를 아직 갖지 못했다면/ 누군가는 지금 울고 있는 거란다/ 이 밥그릇 속에 이 밥 한 그릇 속에/ 이 세상 모든 슬픔의 비밀이 들어있단다”(‘밥은 모든 밥상에 놓인 게 아니란다’).
지금 이 곳의 현실 속에서 “아아 밥은 가난한 백성의 쇠사슬/ 밥은 민중을 후려치는 채찍/ 밥은 죄없는 목숨을 묶는 오랏줄/ 밥은 영혼을 죽이는 총칼”이지만, “그러나 그러나 여기 그 나라가 온다면/ 밥은 평등이리라/ 밥은 평화/ 밥은 해방이리라/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온다면/ 밥은 함께 나누는 사랑/ 밥은 함께 누리는 기쁨/ 밥은 하나되는 성찬”(‘민중의 밥’)이 될 것이다.
‘모든 사라지는 것’에 묶인 시들의 상당 부분은 시인이 마닐라의 아시아 종교음악연구소 초청으로 필리핀에 가 ‘탈식민지 시와 음악 워크숍’에 참가하던 한 해 동안 쓰여졌다. 이 시집에 제3세계주의가 깊게 새겨진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고정희의 화자들에게 밥의 문제는 계급문제이면서 동시에 민족문제이기도 하다.
시인이 필리핀 반식민주의 운동가의 목소리를 빌어 “함께 가자, 아시아인이여/ 우리는 이제 서로 손을 잡아야 한다/ 침략의 술잔으로 축배를 들던/ 백인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할 때, 제 자매가 “흰둥이의 퍼킹머신이 되”(‘호세 리잘이 다시 쓰는 시’)었다고 분노할 때, 그 목소리는 반세기 전 대동아공영권의 미망을 다시 불러내는 주문처럼 들려 섬뜩하지만, 한편으로 “아시안이 아시안의 적이던 시대도 끝나야 한다”는 절규는 지금까지의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평화로운 아시아 공동의 집을 제 미래로 삼아야 할 아시아인들에게는 너무나 정당하다.
빼어나게 아름다운 표제시 ‘모든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의 마지막 두 연은 이렇다. “오 모든 사라지는 것들 뒤에 남아 있는/ 둥근 여백이여 뒤안길이여/ 모든 부재 뒤에 떠오르는 존재여/ 여백이란 쓸쓸함이구나/ 쓸쓸함 또한 여백이구나/ 그리하여 여백이란 탄생이구나// 나도 너로부터 사라지는 날/ 내 마음의 잡초 다 스러진 뒤/ 네 사립에 걸린 노을 같은, 아니면/ 네 발 아래로 쟁쟁쟁 흘러가는 시냇물 같은/ 고요한 여백으로 남고 싶다/ 그 아래 네가 앉아 있는.” 고정희는 여백으로 남아있다. 커다란 여백으로 남아있다. 여백이란 그의 말대로 쓸쓸함이다.
▲ 새 시대 주기도문
권력의 꼭대기에 앉아 계신 우리 자본님
가진자의 힘을 악랄하게 하옵시매
지상에서 자본이 힘있는 것같이
개인의 삶에서도 막강해지이다
나날에 필요한 먹이사슬을 주옵시매
나보다 힘없는 자가 내 먹이가 되고
내가 나보다 힘있는 자의 먹이가 된 것같이
보다 강한 나라의 축재를 복돋으사
다만 정의나 평화에서 멀어지게 하소서
지배와 권력과 행복의 근본이 영원히 자본의 식민통치에 있사옵니다(상향~)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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