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뉴스현장/ 파키스탄 강진 "잔해속 살려달라는 목소리 이젠 안들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뉴스현장/ 파키스탄 강진 "잔해속 살려달라는 목소리 이젠 안들려"

입력
2005.10.10 00:00
0 0

땅을 뒤흔드는 지진에 4층 건물이 통째로 무너져 내리며 콘크리트 더미로 변해버린 파키스탄 북부 발라코트시의 학교 터. 9일 건물 잔해에 매몰된 학생들의 부모와 이웃 주민들 수십 명이 몰려들어 미친 듯이 콘크리트 조각을 들어냈다. 땅속에서 간간이 들려오던 ‘살려달라’는 아이들의 목소리는 사그러들었다.

아들딸이 살아있겠지 하는 희망도 사그러들고 있다. 학교에 보냈던 8살짜리 딸을 잃은 모하마드 라마잔(45)씨는 “딸을 데려간 건 알라의 뜻이지만 나는 내 딸이 그렇게 된 걸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비통해 했다.

이번 강진으로 6만여명의 사상자를 낸 파키스탄에선 10일 구조 및 복구작업이 시작되면서 생사가 엇갈리고 있다.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는 영국 등 외국 구조팀까지 가세해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카슈미르 등 파키스탄 북부 산악도시에는 구조대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지진에 이은 산사태로 도로가 완전히 막혀 고립된 피해 현장에는 헬기가 없으면 접근조차 어려운 상태. 지진에 당한 주민들은 기다려도 오지 않는 구조대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시간을 다투는 인명 구조 작업이 언제 시작될지 기약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지않는 구조대 반세기 넘게 영토분쟁의 희생양이 된 카슈미르는 이번 지진에 또다시 버림 받았다. 가장 큰 피해를 내고도 구호에서 소외돼 죽음의 땅으로 변해버렸다. 1만1,000명이 숨진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수도 무자파라바드는 음식과 식수가 떨어지고 전기도 끊어졌다. 치안 부재를 틈타 빈민들이 상점을 터는 폭동까지 일어나 지옥처럼 변했다. 군병원도 지진에 무너지고 의료진도 모자라 부상자들은 치료도 못 받고 이슬라마바드의 병원으로 후송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간신히 목숨을 부지한 주민들은 아직도 도시 곳곳의 붕괴된 건물 폐허에 갇혀 있는 가족과 친척, 이웃들 때문에 고통이 크다. 산더미처럼 쌓인 건물 잔해는 들어낼 엄두가 나지 않지만 해머를 들고, 그것도 없으면 맨손으로 붕괴 현장에 달려들고 있다. 헬기 부족을 핑계로 구조대를 보내주지 않는 중앙 정부를 믿고 기다리느니, 한 명이라도 더 살려내고 싶은 안타까운 마음에서다.

BBC 인터넷판에서는 현지 취재 기자가 “무너진 집터에서 돌더미를 들어내던 주민들이 하루 만에 매몰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던 생존자수가 4명에서 2명으로 줄었다고 안타까워했다”고 전했다. 타리크 파푸크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노동통신장관은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는 아직 본격 구조작업이 시작조차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인도령 카슈미르에서는 구조 작업이 원활치 않자 주민들이 성난 군중으로 돌변했다. 우리, 스리나가르 등 파키스탄 국경 인접 도시민 수백 명은 9일 피해 복구 지연에 항의, 도로를 점거하며 시위를 벌였다. 10일 2,000여명이 사망하고 1만명 이상이 실종됐다는 공식 집계가 발표되자 예상보다 훨씬 큰 피해에 비통한 분위기는 더욱 커졌다.

기적의 생환 10일 발라코트시의 샤힌공립학교 붕괴 현장에서는 6살짜리 남자아이가 구조되는 게 목격됐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군인 등 구조대원과 민간인들이 구조에 나서면서 극적인 생존자 구출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이슬라마바드의 10층 아파트 붕괴 현장에는 9일 헬멧 등 보호장구를 갖춘 구조대가 도착했다. 오후 늦게 ‘살려달라’는 신음이 들려온 지점에서 구조요원이 건물 쓰레기를 들어내자 기적처럼 한 남성이 초췌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모두 4명이 구출됐으나 매몰된 지 만 하루를 넘겨서까지 생존자가 나오자 구조대의 사기도 올랐다

문향란 기자 iami@hk.co.kr

■ 2년전 이란 밤市 참사와 흡사

8일 파키스탄령 카슈미르의 행정수도 무자파라바드를 강타한 지진은 2년 전인 2003년 12월26일 4만 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이란 남동부의 밤(Bam) 지진 참사와 여러 면에서 흡사하다.

둘 다 진앙지가 지표면과 가까워 체감 위력이 컸고, 지진의 원인인 지질학적 배경도 비슷하다. 건물 대부분이 지진에 극히 취약한 흙벽돌로 지어져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는 것도 닮은 꼴이다.

국제사회가 신속한 구호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도로 교통 등 피해지역의 인프라가 워낙 낙후된 데다 그나마 이번 지진으로 대부분 파괴돼 고립된 피해지역까지 구호장비와 인력이 제때 도달하지 못하는 등 구호의 어려움도 비슷하게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 파키스탄 지진은 진원이 지표면에서 10km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리히터 규모 7.6의 강진이었지만, 비슷한 규모의 다른 지진에 비해서도 피해가 큰 것은 이 때문이다.

이란의 밤 지진도 리히터 규모는 6.3에 불과했다. 하지만 진원이 지표면에서 불과 16km 지점이어서 도시의 90%가 파괴되는 참사를 불렀다.

판구조상 무자파라바드와 밤은 모두 지진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무자파라바드는 인도양판과 유라시아판의 경계면에, 밤은 인도양판 유라시아판 아프리카판 등 3개 판구조가 만나는 꼭지점에 있다.

2년 전 밤 참사 당시 국제사회는 지진 발생 수일이 지나도록 생존자는 물론 희생자 규모가 어느 정도일 지 추정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도로가 무너져 접근이 봉쇄되고 통신이 두절되면서 현장이 완전 고립됐기 때문이었다. 이 때문에 구조작업이 늦어져 살 수 있었던 매몰자도 상당수가 죽어갔다. 이번 지진 역시 똑 같은 모습이 재현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달라질 수 있는 게 한 가지 있다. 국제사회가 2년 전 약속했던 10억 달러의 지원자금 중 실제 이란 정부에 건네진 돈은 2%도 안 되는 1,700만 달러에 불과했다.

사고 당시에는 인도주의를 들먹이며 앞 다퉈 선행을 베푸는 척 하다 관심이 멀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이었던 것이다. 파키스탄 지진 참사가 나자 각국이 또다시 경쟁하듯 구호행렬에 동참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이번에는 어떨까.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 정부, 지진피해 돕기 300만달러 지원키로

정부는 10일 이해찬 총리 주재로 관계장관 회의를 열어 파키스탄 동북부의 강진 피해를 돕기 위해 300만 달러(30억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정부는 우선 50만 달러의 현금과 50만달러 상당의 담요, 구호식량, 의약품 등을 지원하고 나머지 200만 달러는 파키스탄의 복구 수요를 파악해 지원할 예정이다.

정부는 또 의료팀과 구조원이 포함된 한국국제 협력단(KOICA) 긴급 재난구호팀 선발대 4명을 파키스탄 현지로 파견하고 의사 6명과 간호사 4명 등 모두 20명으로 구성된 긴급 구호팀 본대를 파견할 예정이다.

한편 건설단체총연합회(회장 권홍사)는 이날 파키스탄의 건설시장을 고려해 자체적으로 30만 달러를 모금해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남아시아 지진해일 피해 당시 5,000만 달러를 지원했고, 지난달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 발생 때는 3,000만 달러를 지원키로 결정했었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