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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재벌총수의 해외 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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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재벌총수의 해외 출장

입력
2005.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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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청와대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대통령께서 어느 기업의 회장을 만나고자 하여 연락을 취한 적이 있었다. 당시 국가적으로 중요한 과제인 세계박람회 개최지 결정을 앞두고 민간 측 유치위원장을 맡고 있는 그 기업의 회장을 격려하고 또한 적극적인 활동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회사에 전화하였더니 해외에 체류 중이고 언제 귀국할지 모른다는 대답이었다.

알고 보니 마침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그 회사뿐 아니라 많은 대기업의 총수들이 장기간 해외에 머물면서 국내와 연락을 두절하다시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면담은 성사되지 않았고 그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박람회 유치도 좌절되었던 씁쓰레한 기억이 있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지금 해외에 나가 있다. 회사에서는 ‘건강상의 이유’로 검진을 받기 위해서라고 설명을 하였지만 국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국정감사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삼성뿐 아니라 다른 재벌의 총수들도 국정감사장에 출석하는 문제로 인해 신경전을 벌이고 있으며 그 중에는 국회가 열리는 때에 맞추어 해외출장을 나간 사람도 상당수 있다.

●소나기 피하기식 해외체류

세계화 시대에 기업인이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시장 개척을 하고 글로벌 경영전략을 펼쳐 나가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비즈니스 목적에 적합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해외출장의 타이밍도 기업의 경영전략에 비추어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선택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처럼 비즈니스와 관련 없는 이런저런 사유로 인해 최고 경영자가 오랫동안 해외에 체류하게 되면 기업 활동에 지장이 없을 수 없다.

삼성의 이 회장이 밖에서 못 들어오고 있는 상황과 반대로 두산그룹의 박용성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나가는 발이 묶였다. 검찰에서 수사를 위해 출국금지를 했기 때문이다.

전에도 기업인들에 대해 출금조치를 한 적이 종종 있는데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물론 죄가 있다면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꼭 그 방법이 출국금지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기업의 총수들은 우리나라에 뿌리를 둔 기업을 소유하고 있고 재산의 대부분이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이다. 바꿔 말하면 외국에 일시적으로 나가더라도 돌아올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죄가 있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법적인 절차를 통해 그 유죄를 입증하여 실형을 살게 하거나 금전적인 제재를 하는 것이 순리다. 사법부의 판결이 아니라 수사상 필요에 의해 국제적인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의 여행을 금지하는 것은 기업과 아울러 국가의 대외 신인도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문제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시스템이 법과 제도에 따라 일관성 있게 운영되지 못하고 정치적 상황이나 국민 정서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정경유착의 불행한 과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우리는 기업에 대해 엄격한 법적 잣대를 적용하는 일에 익숙하지 못하였다.

●여론재판 세태도 원인 제공

때로는 여론에 따라 기업에 질타와 비난을 쏟아 붓다가도 정작 기업인에 대한 사법처리는 경기 회복 등을 이유로 비교적 관대하게 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따라 기업에서는 해외출장과 같은 편법으로 문제를 모면하고자 하는 관행이 생겼으며 반대로 이를 막기 위해 출국금지와 같은 수단을 남발하게 되었다.

따라서 앞으로 기업인의 위법 사실이 문제가 된다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철저하게 규명하고 법적인 잘못이 있으면 끝까지 책임을 묻는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기업에 대한 문제 제기가 근거 없는 여론 재판이나 국민의 카타르시스 해소를 위한 정치적 행사가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현정택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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