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새까만 숯덩이를 안고 살아왔습니다. 눈 앞에서 로버트 김 선생이 FBI요원에게 끌려 간 이후 제 인생은 말 그대로 ‘절골지통(折骨之痛ㆍ뼈가 부러지는 듯한 아픔)’의 나날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국가기밀 유출혐의로 구속됐다가 약 9년 9개월만에 수감ㆍ가택연금에서 풀려난 로버트 김(한국명 김채곤)이 부인 장명희씨와 함께 다음달 6일 오후 5시 10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다고 김씨의 고국방문 지원모임을 결성한 백동일 예비역 해군 대령이 10일 전했다.
당시 김씨로부터 문건을 건네 받아 ‘죄책감 아닌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던 백 대령은 “이제서야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던 듯 하다”며 주마등처럼 스쳐간 지난 일을 담담히 털어 놓았다.
“가벼운 차량 접촉사고 신고가 들어왔다며 검은 양복을 입은 젊은 미국인 3명이 들어와 로버트 김을 찾았죠.” 백씨는 국군의 날 기념행사를 얼마 안 남긴 1996년 9월24일, 미국 워싱턴 알링턴 포트 마이어 육군장교클럽에서 일어난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행사 귀빈(VIP)으로 초청된 로버트 김은 문을 나서자마자 체포됐고 이후 백씨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공항에서 만나면 끌어안고 마냥 울고 싶어질 겁니다.” 김씨에 대한 존경과 지난 날 겪었던 고통에 하염없이 눈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고 백씨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운명, 운명이란 말 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처음 로버트 김을 만나게 된 것, 그 만남으로 인해 비극의 길을 함께 걷게 된 것, 이제서야 극적인 재회를 하게 된 것에 대해 그는 ‘운명’이란 말만 되풀이했다.
백씨는 고국에서의 김씨 일정에 대해 “부모님 묘소에 들르는 것이 우선이지 않겠냐”고 답했다. 그 동안 건강상태와 수감생활을 묻는 안부에서부터 국내외 정세에 관한 의견까지 두 사람 사이를 왕래한 서신은 수십여 통에 이른다.
백씨는 “10여년간 영어의 몸이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국가관과 미 법원과의 투쟁 등을 강연회를 통해 우리 청소년들에게 담담히 들려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박원기기자 o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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