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2,000명 정도 되는 아르헨티나 동포 사회는 상당히 폐쇄적입니다. 현지인들과 융화가 되지 않아 한국인 1.5세대는 소외감 속에 자랍니다. 20년 동안 아르헨티나에서 겪은 방황의 흔적을 남기고 싶어 영화를 만들었을 뿐인데 여러 큰 영화제에서 불러줘 얼떨떨합니다.”
요즘 세계영화계의 눈길을 끌고있는 영화 ‘아르헨티나, 나를 위해 울어 주나요?’(Do U Cry 4 Me Argentina?)의 감독인 재아르헨티나 동포 배연석(32)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아르헨티나…’는 동포 1.5세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담은 93분짜리 장편영화로 12세 때 이민을 간 배 감독의 경험이 생생하게 녹아 들어있다.
캐나다 토론토영화제와 부에노스아이레스독립영화제 초청을 받았으며 재외동포재단과 영화진흥위원회가 제정한 ‘재외동포대상 시나리오 및 독립영화 공모전’서도 수상했다. 재미동포나 재일동포의 삶을 그린 영화는 적지 않지만 남미동포 사회를 소재로 삼은 것은 그의 작품이 처음이다.
배 감독은 연세대학교 야구부 감독과 삼미 슈퍼스타즈 코치를 지낸 아버지 배수창씨를 따라 1986년 이민 길에 올랐으나 현지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가족은 5년 만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러나 배 감독은 아르헨티나에서 ‘홀로서기’를 선택, 10년 넘게 이산가족으로 살고 있다. 그는 그저 천직철검 봉제나 의류 판매업에 종사하는 한인들의 일반적 ‘운명’을 수용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팔레르모 대학에서 광고를 전공한 뒤 방송전문대를 거쳐 스포츠 전문 방송국 TYC에서 프로듀서 활동을 했다.
그가 방송사를 그만두고 만든 ‘아르헨티나…’의 제작비는 1만 달러(약 1,000만원). 배 감독의 말마따나 ‘초 울트라 저예산 영화’다. 그러니 필름 값은 엄두조차 낼 수 없어 디지털 캠코더로 2년에 걸쳐 촬영을 했다.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편집을 했지만, 후반 작업 비용이 모자라 서울에 있는 가족에까지 손을 벌려가며 간신히 영화를 완성했다.
“영화감독이라는 칭호가 아직 어색하기만 하네요. 재외동포 후배들이 하고 싶은 일에 자기 재능을 다할 수 있는 귀감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배 감독은 방송사 경험을 바탕으로 한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시청률을 위해 거짓을 보태는 다큐멘터리 방송제작 현장의 모습을 코믹하면서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리고 싶다고. 그러나 한국인도 아르헨티나인도 아닌 배 감독은 자신의 정체성 만큼이나 어디서 누구와 함께 영화제작을 해야 할지 고민이다.
“한국은 여러모로 기회가 많은 곳입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가 제 삶의 터전이기도 하고요. 감독으로서 재능이 있는지 아직 모르겠지만, 어디에서든 그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습니다.”
부산=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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