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 예심을 맡은 문학평론가 방민호 김동식 김형중씨가 자신들이 뽑은 9편의 작품 세평을 세 차례에 나눠 싣는다.
방민호씨가 전성태씨의 ‘강을 건너는 사람들’ 정지아씨의 ‘풍경’ 편혜영씨의 ‘시체들’을, 김동식씨가 박성원씨의 ‘인타라망-우리는 달려간다 이상한 나라로5’, 김중혁씨의 ‘무용지물 박물관’ 김애란씨의 ‘달려라 아비’를, 김형중씨가 공선옥씨의 ‘유랑가족’ 강영숙씨의 ‘갈색 눈물방울’ 김연수씨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평한다.
편집자 주
■ 시대적 타자와의 투명한 어울림
강영숙 '갈색 눈물방울'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다룬 소설이 그간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작품들 중 우리 사회의 절대적 타자에 속하는 그들에 대한 신비화의 혐의, 혹은 동정과 연민의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던 작품이 몇이나 있었는지는 미지수다.
강영숙의 ‘갈색 눈물방울’(문학과사회 겨울호)은 그러한 ‘신종 오리엔탈리즘’에 빠지지 않은 채로 외국인노동자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타자들이 기적 같은 연대를 이루어내는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해 낸 수작이다.
게다가 강렬한 이미지들의 연쇄로 이루어진 그녀의 밀도 있는 문체는 사회적 타자들을 다루는 방식에 반드시 구래의 정형적인 스타일만 있는 것은 아니란 사실을 재삼 상기시켜 준다.
만약 ‘리얼리즘/모더니즘’의 이분대당이 더 이상 적용 가능하지 않은 어떤 상태가 현재 우리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면 강영숙의 이 작품은 그 가장 앞줄에 세울 만하다. ‘갈색 눈물방울’은 당대적 타자들의 삶을 당대의 형식에 성공적으로 담아낸 몇 안 되는 예들 중 하나이다.
■ '가난의 아픔' 상투성을 넘어…
공선옥 '유랑 가족'
공선옥의 소설 앞에서 불편하지 않을 독자가 몇이나 될까? ‘유랑 가족’(실천문학사 발행)에서 이 작가가 그려낸 우리 사회 절대 궁핍 계층의 삶은 어떠한 미학적 잣대나 비평적 준거틀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들의 참담한 삶은 모든 비평적 개념과 분석적 어휘들을 한낱 배부른 소리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물론 작가 역시 가난이라는 소재가 우리 문학사에서는 그리 낯선 소재가 아니란 사실을 안다.
그러나 일종의 메타소설로 읽히기도 하는 ‘유랑가족’은 가난은 이제 상투적이라는 속설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를 되묻는다. 가난이 상투적인 소재로 치부되면 될수록 그래서 이젠 TV 시사 프로그램에서마저도 그것을 더 이상 다루기를 회피하는 시대일수록, 누군가는 그 절대가난의 삶을 기록하는 자가 있어야 함을 작가는 역설한다.
더욱이 오래 갈고 닦아 부쩍 무르익은 공선옥의 필력은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에게 이즈음의 소설로서는 드물게도 ‘눈물’을 선사하기도 하는데, 문학의 본령이 감동에 있음을 상기할 때 그것은 참으로 소중한 미덕이다.
이런 이유로, 예심위원들 모두 가난이라고 하는 오래된 화두의 상투성에 대한 우려를 접고, 결국 흔쾌히 공선옥의 항의에 설득당하기로 했다.
■ 소설, 역사의 허구성을 꼬집다
김연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
김연수의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문학수첩 봄호)은 장편 ‘?A빠이 이상’ 이후 김연수가 수행해 온 작업의 집대성이라 할 만한 작품이다.
‘이등박문을 쏘지 못하다’, ‘부넝쒀(不能說)’, ‘거짓된 마음의 역사’ 등 최근의 단편들에서 작가가 시도해 온 그 작업이란 ‘기록된 것에 대한 문학적 회의’라 일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최근 기록된 역사의 허구성을 여러 문헌과 사료들을 참조해 가며 폭로하느라 여념이 없다. 이런 작품군들 중에서도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은 특유의 메타소설적 형식, 해박한 인문학적 교양, 그리고 정확한 문어체 문장 구사 등, 김연수의 ‘불가지론’이 가장 원숙한 문학적 형식을 얻은 수작이라 할 만하다.
특히 화자의 사랑 이야기에, 왕오천축국전의 한 구절을 둘러싼 지적 추리, 그리고 설산을 향한 등반 이야기가 중층적으로 전개되다가 결국엔 다시 얽혀 하나의 주제를 향해 전진하는 탁월한 구성력은 가히 이 소설의 백미다.
구성의 중층성에 따른 난독성의 문제를 염려하지 않은바 아니나, 더러는 난독성이 쉬운 해독을 거부하는 훌륭한 예술작품의 요건으로 꼽히기도 하는 터에, 김연수의 이 작품을 수상 후보로 꼽지 않을 어떠한 이유도 예심 심사위원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김형중 문학평론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