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사거리 위쪽으로 올라 오다 보면 망치질 하는 남자 조각 있잖아. 그 앞에서 보자.” 서울 충정로 흥국생명 앞에 있는 미국 조각가 조나단 보롭스키의 작품 ‘망치질 하는 사람’ 을 두고 하는 말이다. 조각가 이름이나 조각품의 제목까지는 몰라도 ‘그 남자’를 사람들은 잘 안다.
조각 작품들이 공원을 점령한 지는 이미 오래. 최근에는 백화점, 병원 등 미술과 무관했던 대중 공간까지 미술이 깃들고 있다.
지난 4월 문을 연 서울 소공동 롯데 백화점 명품관 에비뉴엘이 가장 대표적인 곳. 지하 2층부터 지상 4층까지 에스컬레이터 연결 지점이나 벽면 등 매장 곳곳 40여 공간이 미술품전시를 고려해 디자인, 매달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걸리고 있다.
8월 개점한 서울 소공동 신세계 백화점 본점도 마찬가지다. 신관 정문에는 짧고 가는 철사를 무수히 반복 용접해 만든 존배의 조각품 ‘기억들의 강’이 놓여 있다.
갖가지 과일과 야채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나무 형상을 주조로 한 최정화씨의 대작 ‘과일 나무’(철제, 우레탄, 폴리에스터 소재)도 후문에 설치돼 시선을 붙든다.
이외에도 백화점 회전문과 11층 스카이 파크 등 예상치 못한 곳곳에 다양한 작품들이 숨겨져 있다. 경영 지원실 장혜진 홍보담당 과장은 “상품 구매만을 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예술작품까지도 감상할 수 있는 종합 문화 공간을 만들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서울 강남 삼성의료원 영안실 전면에는 조문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파란색 대형 조각품이 놓여있다. 재일 설치 미술가 최재은씨의 ‘시간의 방향’이란 작품. 높이 13.5m의 거대한 원뿔이 비스듬히 기울어 언뜻 보면 떨어지는 눈물 방울처럼 보인다. 서울 삼청동 ‘더 레스토랑’의 경사진 지붕에 있는 빨간 티셔츠의 여인은 보롭스키의 ‘걷는 여자’다.
공개된 장소에 작품을 설치, 전시하는 ‘공공 미술’이 국내 도입된 지는 20년이 넘었다. 문화예술진흥법은 1984년 서울을 시작으로 ‘건축물에 대한 미술 장식’ 조항을 의무화하면서 미술을 ‘바깥’에서도 즐길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박삼철 ㈜아트컨설팅 서울 소장은 “작가들 대부분은 단지 미술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작품을 존재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죽어라 자기 작업만 하기 일쑤”라며 “그렇게 태어난 작품은 관련자들이나 미술관 안에만 묶여 , 바깥에서는 선조차 보이지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한 실정”이라고 안타까워 했다. 공공 미술이 활성화돼야 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박 소장은 “공공 미술은 특설 무대에서의 쇼가 아니라 일상 속에 존재해야 한다”며 “무엇이든 팔려고만 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것은 상품이 아닌 선물로서 존재한다”고 말했다.
조윤정기자 yj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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