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의 구속영장에는 R2(유선중계망을 이용한 유선전화와 휴대폰 간의 통화 감청장비)를 정치사찰에 이용하기 위해 국정원 내에 ‘R2 수집팀’까지 따로 꾸렸던 사실이 명시돼 있다.
불법감청(도청)만을 수행하는 R2 수집팀이 따로 있었다는 사실은 국정원 시절의 도청이 합법감청 사이사이에 끼워 넣어 간헐적으로 실시됐다는 국정원의 발표 내용을 정면으로 뒤집는 것이다. 감청장비를 이용한 국정원의 도청이 얼마나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졌는지를 잘 드러내 주는 대목이다.
영장에 따르면 R2 수집팀이 취득한 도청 내용은 ‘R2 수집팀장-국내수집 과장-종합처리 과장-과학보안국(8국) 국장’ 등 4단계 보고체계를 거쳐 매일 아침 ‘통신첩보’라는 이름으로 김은성 전 차장에게 보고됐다. 통신첩보는 김은성씨를 통해 국정원장에게까지 보고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R2 수집팀의 도청작업은 외부로 돌아다닐 필요 없이 국정원 내 R2 수집팀 사무실에서 이루어졌다. R2는 1996년 장비개발계획이 수립돼 8국 산하 운영단 개발팀에서 98년 5월 1세트를 개발한 후 99년 9월 5세트를 추가 제작했다. 이후 광화문 등 6개 전화국의 도움을 받아 중계통신망을 연결해 사무실에서 도청을 해왔다. 도움을 준 전화국 전송실장들에게는 매달 50만원씩 지급했다.
99년 8국에서 20세트가 개발된 휴대폰 간 통화 감청장비인 CAS는 R2와 달리 도청대상자에게 200m까지 접근해야 하는 한계 때문에 정치사찰 용도로는 광범위하게 사용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성씨 구속영장에도 CAS를 이용한 별도 수집팀의 존재는 나와 있지 않으며, 2001년 3월 6국 소속 직원이 CAS를 빌려 경기 고양시에서 대공용의자 김모씨를 도청한 사례만 언급돼 있다. 마약ㆍ산업스파이ㆍ대공수사 등 고유업무에 주로 사용했다는 국정원측 주장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CAS 역시 법원이나 대통령 승인 없이 불법적으로 사용되기는 마찬가지였다. 휴대폰 도청은 불가능하다고 밝혀온 상황이었기 때문에 국정원은 이들 감청장비의 존재를 감출 수밖에 없었고 스스로 이 장비들을 합법적으로 사용할 여지를 차단한 것이다.
검찰은 김은성씨가 2차장이 되기 전 대공정책실장으로 있을 때부터 R2와 CAS를 통한 불법감청 내용, 감청장비의 현황 및 기능, R2을 이용한 불법감청 실적 등을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또 CAS의 운영지침을 결정하고, CAS사용 부서의 사용신청이 들어왔을 때 이를 승인하는 역할도 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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