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 새삼 알게 되는 것은 모든 것은 변한다는 당연한 이치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난 3일로 15주년을 맞은 독일 통일에 대해 말하는 여러 논평들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느낌에 빠졌다. 열정은 간 데 없고 냉정은 초라하다. 통일 과정의 갖가지 실책을 따지는 반성과 회한들은 마치 열정의 과오에 대한 고발인 듯하다.
●간 데 없는 統獨의 열정
동독의 모든 것을 하루 아침에 서독처럼 만들려 했던 과욕과 오판을 재확인 하는 것은 씁쓸하다. ‘독일병’을 앓는 독일로부터 “통일은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는 말을 다시 들었다.
되새기는 것은 열정의 함정이다. 열정도 변한다,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독일은 극적으로 말해 준다. 이를 깨달을 줄 모르면서 대사(大事)를 말하면 어리석다. 노무현 정권의 탄생은 열정의 산물이다.
그러나 열정은 식었고 회의는 팽배한다. 열정을 의심하는 냉정의 복원이다. 노 정권에 지금 어떤 회의가 있는가를 다시 설명할 필요는 없다. 지지율 저하, 지도력 약화, 국정 무능, 인기 상실 등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은 부질 없다.
세상은 변한다. 미국이 9ㆍ11 테러로, 우리가 참여정부로 변했었다. 그러나 그게 다 인가. 세상은 또 변했다. 참여정부 임기 절반을 넘기면서 국민은 큰 교훈을 얻고 있는 중이다.
이 교훈은 결코 작은 교훈이 아니다. 먹고 살기 힘들어진 시행착오의 대가를 고스란히 치렀다. 노 대통령에 대한 지지는 처참하고 여당 생리상 작금의 열린우리당 지지 수준은 붕괴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더 변한다.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이미 변해 있다. 진보냐, 보수냐의 논쟁으로 몇 번의 해를 넘겼지만 어느 쪽도 정통하지 않다는 것이결말로 모아진다. 뉴 라이트가, 뉴 레프트가 등장하는 게 이를 말해 준다.
청계천 복원으로 이명박 서울시장이 뜬다. 엊그제 최신 여론조사는 여야 사이에 이 시장이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를 넘어 대통령감으로 꼽히는 수위의 인물로 치솟았다고 한다. 시중에서는 그를 ‘MB’라고 불러야 세련된 화법인 양 통한다.
단순하게 말해 지도자가 할 일은 제대로 부수고 올바르게 건설하는 것이다. 이를 그대로 해 낸 게 이 시장의 청계천 복원이다. 창조적 발상, 돌파력과 추진력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이를 돋보이게 한 것은 노 정권의 비생산적 ‘토론 정치’ ‘무능 통치’의 역작용이었다. 바라던 것을, 보고 싶던 것을, 누리고 싶은 것을 눈 앞에 갖다 주는 리더십의 한 전형을 실물로 과시한 사람으로 이 시장이 꼽힌다. 그러나 이 시장은 마냥 희색해도 되나.
복원된 청계천은 또 달라진다. 환호하던 시민은 또 변한다. 한나라당 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 않는 사람이 없다. 치고 빠지되, 결코 발을 담글 줄 모르는 ‘절대 야당’. 정권에 등돌린 층을 빼올 줄 모르는 ‘한계 정당’. 상대가 없이는 지지도 못 만드는 ‘거울 정당’. 이 것이 한나라당이다.
연정 문제를 논의한 여야 영수회담이 박 대표의 전술적 승리였지만, 회담 직후 박 대표의 지지가 동반 하락한 것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여론의 눈이었다. 이 시장이 이 범주에서 크게 다른 사람이 아니다.
●계속 변하는 게 세상 인심
변하는 건 순리다. 선거에서 지는 쪽은 이 자각이 모자라는 쪽이다. 이 자각으로 선거를 잡은 사람이 노무현 후보였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먼저 변하는 쪽에 선거는 달렸다.
시대조류가 변하고 생각이 변하기까지 남은 2년 반은 길고도 짧다. 이 시장의 웃음이 계속 갈 수 없는 기간이다. 다음 선거가 보수냐, 진보냐의 선거일까. 그렇지 않다. 다음 선거는 보수도 진보도 아닌, 다른 그 무엇의 다툼이 될 공산이 크다. 사람들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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