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알 듯 말 듯한 단어가 한 둘이 아니다. 히브리어에서 라틴어, 독일어, 영어, 일본어를 거쳐 중국어로 번역된 것을 다시 우리 말로 옮기다 보니 외래어 범벅이 되고 일상에서 쓰지 않는 어휘가 가득하다. 성경 읽기를 힘들어 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구약학자 최의원(崔義元ㆍ81) 박사가 8년 작업 끝에 ‘새즈믄 우리말 구약정경’(신앙과 지성)을 냈다. 중간 번역을 거치지 않고 히브리어를 바로 우리 말로 옮긴 것이다.
교회가 아직 받아들이지 않았으니 성경이 아닌 정경(正經)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1,000년에 걸쳐 완성된 구약 39권은 각 권마다 어법, 용어, 사회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혼자 번역한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렵다.
총신대 신학대학원 교수, 천안대 신학대학원장 등을 지낸 그는 예장 합동측 대표로 ‘새번역 성경’ ‘공동번역성경’ 등 공동 작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런 그가 노구를 이끌고 번역에 다시 도전한 이유는 뭘까. “공동 번역에서는 학자마다 자신의 주장을 반영하려 하기 때문에 적정선에서 합의를 하게 됩니다. 소신껏 할 수 없지요. 게다가 기존 성경은 여러 언어로 반복 번역한 것을 한글로 옮겼기 때문에 원문의 의미와 차이 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는 먼저 키 큰 책상을 만들었다. 앉아서 일하면 다리 관절과 근육이 굳을 수 있기 때문에 서서 작업하기 위해서 였다. 일요일만 빼고 하루 4시간 어떤 때는 5~6시간씩 매달렸다. 외출도, 사람 만나기도 삼갔다. 내용이 난해해 겨우 원고지 6매(총 8,000여매)만 채운 날도 있었다. 그 동안 기관지염 등으로 두 차례나 쓰러졌다.
이렇게 탄생한 ‘새즈믄 우리말 구약정경’에는 “구약은 밀교가 아니므로, 주석서나 전문적 성경지식 없이도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이 반영돼 있다. ‘신명기’를 ‘신율법서’로, ‘민수기’는 ‘민족방랑사’로, ‘레위기’는 ‘레위인의 법전’으로 바꿔 제목이 내용을 정확히 대변토록 했다.
‘창조’라는 단어는 문맥에 따라 우리에게 익숙한 ‘개벽’으로, ‘복 있는 사람‘은 ‘복 많이 받은 사람’으로, ‘가라사대’는 ‘말씀하셨다’로,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는 ‘물의 중간에 공간이 생겨’로 각각 바꿨다. ‘하늘들의 하늘’로 번역한 ‘heaven of heavens’는 ‘하늘 너머 하늘’로 옮겼다. ‘쇠젖기름’과 ‘쇠젖묵’이라는 우리말을 만들어 ‘버터’와 ‘치즈’를 대체했다. 제목에 순 우리말 즈믄(千)을 넣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어 일어는 물론 히브리어 헬라어 시리아어 등 14개 언어에 능통한 뛰어난 어학 실력이 큰 힘이 됐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번역을 하면서 옆에 한글학자가 없음은 늘 아쉬웠다고 했다.
“책의 수익금은 장학금으로 내놓기로 했다”는 그는 “번역에 이의를 갖는 신학자가 있다면 얼마든지 토론하고, 좋은 표현이 있으면 수용하겠다”고 말했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사진=배우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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