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문화재 다수를 소장하고 있는 서울대 규장각이 올 초 신관을 증축하면서 실내 공기 등 내부 환경에 대한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완공 직후 수장품을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규장각은 또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 조선왕조실록(국보151-1ㆍ3호) 원본을 촬영하는 데이터베이스(DB) 구축작업을 진행하고, 작업장 감독도 소홀히 한 것으로 밝혀져 문화재 훼손이 우려된다.
5일 서울대와 문화재청 등에 따르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1월 중순 실시한 규장각 신관 수장고 환경검사에서 수장품 훼손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이산화황, 포름알데히드, 총탄화수소 등이 대기환경 기준, 다중이용시설 실내공기질(質) 기준보다 4~6배 가량 높게 나타났다.
시멘트로 인해 공기가 약알칼리성으로 나타나 충분한 건조와 환기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수장고 내부를 수장품의 보존에 적합한 상태로 일정하게 유지 관리한 후 수장품을 이전하도록 권고했다.
그러나 규장각은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이 같은 보고서를 2월3일 전달 받고도 2월 중순 수장품 이전을 강행했다.
박물관 등 문화재 관련 건물은 완공 후 적어도 4~5개월간 오염된 공기를 제거하는 과정을 거친다.
지난해 9월 완공된 경주 출토유물보관동은 올해 초에야 유물을 들여놓았고, 이달 말 재개관 예정인 국립중앙박물관도 수장고를 2003년 11월 완공한 뒤 2004년 4월부터 유물을 옮겼다.
규장각 관계자는 이에 대해 “지난해 12월 20일 신관 건물을 완공해 1월에 환경검사를 받았고 이전은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사를 맡은 시공사 관계자는 “통풍시설 설치 등 최종 공사는 2월 중순”이라고 밝혔다. 공사를 마치자마자 수장품을 채워넣기 시작한 것이다.
규장각은 조선왕조실록 이미지 촬영작업에서도 중대한 허점을 드러냈다.
이 작업은 연구자나 일반인에게 원본을 공개하기 위해 실록을 촬영하는 것으로, 한 전산업체에 의해 4월부터 9월까지 진행됐다. 문화재보호법은 국가지정문화재의 탁본 영인 촬영은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문화재청은 작업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규장각 관계자는 “허가를 받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며 “하지만 내부 지침을 두고 철저히 했기 때문에 실록 훼손 우려는 없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촬영작업을 했던 A씨는 “커피 같은 음식물을 작업장에 반입하거나 실록을 오동나무 상자에 넣어두지 않고 책상 위에 그냥 쌓아두기도 했다”며 지침 위반 사실을 털어놓았다. 규장각 측은 작업을 관리 감독할 추가 인력도 배치하지 않았다.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보존학과 교수는 “오래된 문화재는 공기만 조금 달라져도 영향을 받을 정도로 민감하다”며 “관련 법률 미비로 문화재 관리는 각 박물관에서 알아서 하는 형편이다 보니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준모 기자 moonj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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