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한 여중생이 유서에 남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항변은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1등만을 강요 받다 결국 투신 자살을 택한 이 학생의 이야기는 영화로, 책으로 만들어져 화제를 더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19년이 지난 지금, 성적 비관 십대들의 자살 소식에 놀라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뉴스도 아니다. 수학 능력 시험 등 성적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학생은 매년 200여명에 이른다는 소식이다. 2003 통계청의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15~19세 청소년 사망원인 중 자살이 교통 사고에 이어 2위를 차지, 암보다 더 무서운 질병으로 떠올랐다.
지금 청소년 사이버 상담실을 채우고 있는 사연을 보자.
“진짜 살고 싶지 않아요. 제가 왜 공부 못 한다고 욕을 먹으면서 남의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는지. 정말 그냥 죽어 버리고 싶습니다. 제가 죽으면 그 후에는 바뀔까요? 그 때라도 바뀐다면 기꺼이 죽을 수 있습니다. 자살하고 싶습니다.” -민아 (가명), 고교 1학년 재학중-
“엄마 아빠의 이혼, 새 엄마와 아빠의 잔소리, 학교 공부로 받는 스트레스. 정말 머리 아프게 하는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을 수십 번도 넘게 했습니다. 옥상에서 뛰어내릴까, 아니면 약 먹고 죽을까, 칼로 그냥 심장을 찔러 버릴까. 정말 죽어 버리고 싶습니다.” -이재호(가명) 중학교 1학년 재학중-
한국청소년상담원이 올해 전국 중ㆍ고교에 재학중인 청소년 3,11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체 학생의 절반에 가까운 48.6%가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답했다. 자살 방법까지 생각한 경우도 여자의 16.6%, 남자의 11.4%였으며 이 중 자살 시도로 이어진 경우는 여자의 7.2%, 남자의 5.5%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하고 싶은 이유, '성적 비관'이 가장 많아
자살 충동 경험이 있는 청소년에게 자살하고 싶은 이유를 묻자 ‘성적이 고민되어서’가 31.5%로 가장 많았으며, ‘가정이 화목하지 않을 때’와 ‘부모에게 잔소리를 들었을 때’가 각각 25.2%와 25.1%를 차지했다. 이 외에 ‘나의 억울함을 알리고 싶을 때’가 20.1%, ‘친구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가 18.1%, ‘외모에 열등감을 느낄 때’, ‘교내 폭력을 당했을 때’, ‘선생님과의 관계가 안 좋을 때’ 등의 순이었다.
▦자살 충동 '1년에 1~2번', '투신'이 쉬울 듯
처음으로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한 시기는 ‘중학교 때’라는 응답이 51.2%로 가장 많았고 ‘초등학교 고학년 때’가 26%, ‘고등학교 때’가 16.9%인 것으로 나타났다.
빈도수는 ‘1년에 1~2번’이라는 응답이 많았고 1달에 1~2번, 1주에 1~2번 순으로 이어졌으며 ‘거의 매일’이라고 대답한 학생도 6.4%나 됐다. 자살 충동의 지속도에 대해서는 64.7%가 ‘잠깐 생각했다가 금방 잊는다’고 답했으나 ‘비교적 오랫동안 생각하게 된다’는 학생이 30.7%나 됐고 ‘항상 생각하고 있다’는 학생도 4.5%였다.
자살 방법까지 생각한 학생의 경우 25.2%가 ‘투신’을, 12.3%가 ‘약물사용’을, 그 다음은 ‘손목 그음’과 ‘목매기’ 순이었다.
▦언론의 자살 보도
언론의 자살 보도가 십대의 자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언론이 연예인이나 일반인의 자살 소식을 전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체 학생의 34.6%가 ‘이와 비슷한 정도로 예방적 프로그램을 같이 방송해야 한다’고 답한 한편, 자살을 자극하기 때문에 전하지 말아야 하다는 응답도 17.1%나 됐다.
실제 지난 2월 모 인기 여배우 자살 사건 이후 3~4개월 동안 한국청소년상담원 사이버 상담실에는 자살 충동으로 상담하는 사례가 하루 평균 2~3건에 이르렀을 정도다.
▦효과적인 자살 예방법, '학교 수업에 포함시켜야'
학생들은 청소년 자살 예방법으로 ‘개인의 의지’와 ‘부모의 관심’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게 ‘학교 수업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40%가 넘었고, ‘연예 인광고’나 ‘소집단 교육’ 등도 효율적일 것이라 답했다. 한국청소년상담원 (02)730-2000 조윤정기자 yjcho@hk.co.kr
▦자살징후 진단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울한 증후를 보이게 된다. 만일 다음 증상들 가운데 다수에 해당되고 우울한 기분이 2주이상 계속되면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전문가와 상담을 해야 한다.
-수면이나 식습관이 변했나?
-쉽게 화를 내고 반항적으로 되거나 반대로 갑자기 소극적이고 내성적으로 변했나?
-술을 마시거나 약물 복용, 혹은 면허증 없이 운전을 하는 등 위험한 행동을 하나?
-성적이 떨어지나?
-최근 수치스러운 경험을 했나?
-집중을 잘 못하나?
-의욕이 없나?
-갑자기 외모에 전혀 신경 쓰지 않나?
-두통, 복통, 피로 같은 감정적 스트레스와 연관된 신체증상을 호소하나?
-아끼던 물건을 남에게 주나?
-칭찬이나 부모가 주는 보상을 오히려 싫어하나?
-노래나 시, 일기 등에 죽음에 관한 글을 쓰나?
-‘더 이상 못 견디겠어’, ‘아무래도 상관 없어’, ‘죽었으면 좋겠어’란 말을 자주 하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