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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청계천의 광통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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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 위의 이야기] 청계천의 광통교

입력
2005.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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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이 복원되었다. 그 가운데 옛모습과 가깝게 복원된 다리가 광통교이다.

태조 이성계에겐 두 명의 아내가 있었다. 당시엔 전처 후처라고 부르지 않고, 향처 경처라고 불렀다. 향처인 신의왕후에겐 다섯 아들이 있었고, 경처인 신덕왕후에겐 두 아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다섯째 아들 방원과 신덕왕후 강씨는 나라를 세우기 전에는 서로 긴밀하게 협력했고, 나라를 세운 다음엔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사사건건 대립했다.

신덕왕후가 죽자 태조는 지금의 정릉에 묘를 쓰고, 잡귀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봉분 주위에 구름과 당초무늬가 아로새겨진 신장석을 둘렀다. 보는 사람마다 신의 솜씨라고 감탄한 이 돌조각은 당시 팔도에서 돌을 가장 잘 다루는 제주도 석공의 솜씨라고 했다. 그러나 그 신장석은 나라를 연 개국왕비의 무덤에 오래 있지 못했다.

태종(방원)이 흙다리였던 광통교를 돌다리로 개축하면서 정릉의 신장석을 뽑아 다릿돌로 썼다. 원수 같은 계모의 혼백마저 다리를 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짓밟히라는 뜻이었다. 그 돌조각이 청계도로 아래에서 잠자다가 다시 햇볕 아래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은 가도 미움과 저주의 흔적은 역사로 남는다.

소설가 이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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