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산 수산물에서도 발암 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됨에 따라 방역당국은 물론 양식 및 유통업계에 비상이 걸리고 소비자들의 먹거리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우리 소비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산 수산물에 이어 국내산 수산물에서도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되면서 소비위축과 이에 따른 수산업 및 양식업 등 관련 업종의 줄 파산 등 ‘수산물 파동’까지 우려되고 있다.
해양수산부가 다른 어종에 대한 실태 조사에 나섰지만 현재까지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된 어종은 송어와 향어 2종이다. 1급수에서 서식하는 송어는 불포화지방산과 단백질이 다량 함유돼 있어 인기 횟감으로 자리를 잡으면서 전국의 양어장 60㏊에서 양식되고 있다.
향어도 맛이 좋고 성장 속도도 빨라 강원 소양호와 한강 상류 일대를 중심으로 47㏊에서 대규모로 가두리 양식되고 있다. 양식을 통한 송어와 향어의 국내 생산량은 각각 3,509톤(생산액 196억원)과 702톤(27억원)으로 주요 양식어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3.4%, 4.7%를 점유하는 등 규모도 적지 않다.
때문에 말라카이트 그린을 함유한 송어와 향어가 오랜 기간 상당량이 시중에 유통돼 왔으며, 소비자들이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먹었던 것으로 드러나 국내산 전체 수산물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당장 노량진 수산시장을 비롯한 횟집 등에는 손님의 발길이 끊기는 등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송어의 경우 전체 양식장의 20%, 향어의 경우 전국 140곳 양식장 가운데 2곳만 조사했는데도 절반 이상의 양식장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을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나 전국 양식장에 대한 전수 조사를 할 경우 말라카이트 검출은 다른 어종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대부분 육지 양식장에서는 부화 기간 중 물 곰팡이가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제거하기 위해 시중에서 공업용이나 염색용 등으로 쓰이는 말라카이트 그린을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양부는 그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지 않지만 바다 양식장에서도 말라카이트 그린을 사용한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내 수산업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또 일부 바다 양식업자는 운반 과정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송어와 향어의 말라카이트 그린 검출로 인해 국내 민물고기 수출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국내 민물고기 가운데 뱀장어가 연간 7,000㎏ 정도 일본과 대만에 수출되고 있다.
황양준기자 naigero@hk.co.kr
■ 말라카이트 그린이란
발암 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은 암과 인체기형, 돌연변이 등 부작용을 유발, 많은 국가에서 수산물 양식에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7월 중국산 뱀장어와 자라에서 검출되면서 주목을 받아온 말라카이트 그린은 연어, 송어의 부화란에 기생하는 수생균을 치료하는데 효과가 있는 물질(화학 약품)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금붕어와 잉어에게 각각 1ppm, 1.3ppm 이상 사용하면 하루 이내에 이들 어류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독성이 강하다.
학계에서는 염화수은에 버금가는 정도의 독성물질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도 2003년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의해 유독성 물질로 지정, 식용 어류 등에 사용을 금지했다. 그러나 섬유와 목재 종이 잡화 등의 염색 또는 체외 진단용 시약 등으로는 지금도 사용된다.
■ 강원도 양식장 르포, 양식업자들 “사형선고나 마찬가지”
6일 오전 강원 평창군 미탄면의 양식장 호림수산. 주인 이영진(39ㆍ평창군 내수면어업계 사무국장)씨는 송어에 사료 주는 것도 잊은채 다른 양식장 주인 7, 8명과 함께 절망의 한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양식장 옆에는 배합사료 4, 5포대가 그냥 쌓여있었다. "사료는 줘서 뭐합니까. 어차피 팔지도 못할 텐데..."
15년 전부터 송어 양식을 해온 이씨는 "이제 밥 굶는 일만 남았다"며 "강원도는 워낙 물이 맑아 말라카이트 그린은 물론 항생제도 잘 안쓰는데 정말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씨의 양식장은 1,000여평 규모다. 송어만 연간 70톤 정도를 출하하고 있다. 물은 그대로 식수로도 쓰는 용천수를 사용한다.
또 다른 양식장 주인 김모(45)씨는 "양식장 뿐만 아니라 송어 향어 횟집, 유통업자 등이 모두 죽게 생겼다"고 말했다.
이 곳에 모인 양식업자들은 "정부가 발암물질인 말라카이트 그린에 대해 그동안 일언반구의 계도나 권고, 지도도 안하다가 갑자기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며 "내수면 양식업 자체가 말살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80년대 초까는 말라카이트 그린을 사용했다는 애기는 들었으나 우리는 절대로 사용하지 않는다"며 억울해했다.
같은 날 춘천시 동면의 한 양식장. 3,000여평의 이 양식장 30개의 수조에는 송어 산천어가 4, 5만마리나 뛰놀고 있었다. 양식장 옆에 횟집도 같이 운영하고 있었으나 이날따라 손님이 없었다.
물은 소양강댐 발전용수를 사용해 항상 흐르고 있어 수조 상태도 양호했다. 주인은 정부 발표를 듣고 동종업계 사람들과 대책을 논의하러 나갔고, 종업원들은 망연자실 일손을 놓고 있었다.
강원도 내수면개발시험장 관계자는 "부화 초기에 폐사율이 높아 약품을 사용하고, 성어에도 물곰팡이가 달라붙어 피부병을 일으키곤 해 약품을 투입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예전에 사용하다 남은 말라카이트를 사용했는지는 모르나 국내에서는 오래 전에 유통이 금지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춘천시 관계자는 "일선 시, 군은 발암성분을 검사할 기기나 장비가 없어 양식장 운영에 대한 관리, 수질검사 등만 관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도의 경우 강릉시 소재 국립수산물품질검사소 강원지소에서 성분검사를 담당해 인력이나 장비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춘천=곽영승 기자 yskwak@hk.co.kr
■ 수산물 관리 허점 투성이
국내 양식 송어와 향어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되면서 정부의 수산물 위생관리시스템이 총체적 허점을 드러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국내 양식장에서도 말라카이트 그린이 사용됐다는 의혹이 수 차례 제기됐지만 그 때마다 “국내 민물고기에는 말라카이트 그린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발표해왔다.
국내에서 이 문제가 처음 불거져 나온 것은 7월 중순 중국산 뱀장어와 자라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부터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해양수산부를 비롯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열어 뱀장어를 양식하고 있는 전북과 전남 등 4개 양식장에 대해 1차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결과는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어 8월 들어 중국산 잉어, 붕어, 쏘가리, 초어, 대두어 등에서도 말라카이트 그린이 검출됐다는 외신보도가 나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2차례에 걸쳐 국내산 민물고기 전반에 걸쳐 모니터링을 확대했으나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달 23일 열린 해양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내산 수산물의 말라카이트 그린 사용 여부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되자 해양부는 국립수산물품질검사원을 통해 국내 내수면과 바다 양식장에 대한 전반적인 실사에 착수했다. 실사에 착수한 지 20일도 안 돼 말라카이트 그린을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 때문에 그 동안 정부의 검사와 대책이 형식적이고 부실했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정부는 1990년대 초 말라카이트 그린이 발암물질로 규정돼 사용이 금지됐는데도 2000년 이후까지 국내 양식장에 사용을 권장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2000년 3월 발간된 ‘수산기술지 제7호’에는 말라카이트 그린이 양식새우의 질병치료제로 소개돼 있다.
해양부는 말라카이트 그린이 유해화학물질로 규정돼 있는데도 지금까지 단 한차례의 현장 조사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져 양식장 관리에도 허점이 많았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해양부는 “우리나라 수산업 법에는 사용 가능한 의약품만 표기하는 방식으로 돼있어 사용이 불가능한 말라카이트 그린은 양식업자들이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실태 조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황양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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