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잃고 혼자 돌아오신 할아버지가 말씀을 잃어버렸어요.” 고 채종순(72ㆍ여)씨의 손자 김정호(20)씨는 울먹거리기만 했다.
경북 상주시 MBC가요콘서트장 압사 사고 이틀째인 5일 오전 7시20분께 성주 성모병원 장례식장에서 장손 김기용군이 채씨의 영정을 들고 앞장섰다. 사고 이후 첫 장례식이었다.
갑작스럽게 어머니, 할머니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채씨는 사고 당일 실제 가수들이 상주에 온다고 남편 김씨(74)과 함께 공연시작 6시간 전인 오후1시께 버스를 타고 길을 나섰다.
남편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병원에 입원 중이다. 김씨는 아내를 잃은 슬픔에 아무 말도 않고 있다고 유족은 말했다. 할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키우다시피 했다는 쌍둥이 손녀 나영(23) 미영(23)자매도 영결식장에서 북받치는 슬픔을 주체할 수 없어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뒤이어 고 이순임(66ㆍ여), 김인심(67ㆍ여)씨의 장례식이 가족별로 열렸다. 이씨의 유가족은 “어머니가 오후4시까지 하루종일 일만 하다가 공연을 보러 가셨다”고 슬퍼하며 장지로 떠났다.
‘인심’(仁心)이라는 이름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베풀기를 좋아했던 고 김인심(67ㆍ여)씨는 남편과 금슬이 좋기로 유명했다고 동네 사람들은 전했다. 막내 딸 김순훈(39)씨는 “어머니는 시장에 다닐 때도 항상 아버지와 함께 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숨진 김씨는 대구에서 건축업에 종사하다 3년전 은퇴한 남편 김병술(68)씨를 따라 고향으로 함께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남편 김씨는 “결혼 후 40년만에 처음 보러 간 공연이었는데…”라며 말을 놓아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날 장례식을 치르지 않은 황인규(12) 황인목(14) 형제(사촌) 등 나머지 8명의 피해자들의 장례식도 오는 6, 7일 사이에 대부분 개별적으로 치뤄질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날 합동분향소에는 최문순 사장과 고석만 TV제작본부장, 김영희 예능국장 등 MBC 관계자들이 조문을 와 문상했다.
사망자들에 대한 보상문제가 전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이처럼 3일장, 5일장에 맞춰 장례가 치뤄지고 있는 것과 관련 외지에서 온 관련자들은 한결같이 “상주는 양반과 예절의 고향이란 말이 틀리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그동안 일부 비슷한 사고의 경우 시신을 볼모로 관계 당국과 보상금 투쟁을 벌이느라 장례식이 하염없이 지연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상주=박상진기자 oko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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