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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의 미디어비평] 보여주는 국정감사는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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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재의 미디어비평] 보여주는 국정감사는 그만

입력
2005.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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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정감사에 관한 보도를 보고 있으면 국회의원과 기자의 역할이 뒤바뀐 것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킬 때가 있다. 국감 기간 신문 방송에 나는 의원들의 활동상은 마치 특종기사를 취재해 보도하는 기자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의원들은 앞 다퉈 언론에 비중 있는 뉴스거리를 제공하려고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오히려 기자들은 적극적인 취재 보다는 의원들이 국정감사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수동적인 ‘감사’만을 하고 있을 뿐이다.

뉴스에는 ‘냄새’가 있다고 한다. 유능한 기자는 뉴스의 냄새를 날카롭게 맡아 집요하게 뉴스거리를 파고들어, 취재한 결과를 세상에 폭로한다. 이처럼 천부적 또는 새롭게 학습한 기자적 후각을 의정활동에 적용하는 의원들이 늘고 있다. 의원들은 국감에 임하기 이전에 이미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필요하면 잘 아는 기자들과 만나거나 기자회견에 나선다.

열심히 찾아낸 뉴스거리를 언론을 통해 유권자에게 전달함으로써 자신의 국감 활동상을 알리기 위해서다. 그 결과 국감은 언론에 보도된 대로 십중팔구 의원들이 만들어낸 ‘뉴스거리’ 정도로 전락하고 있다.

이제는 기자처럼 취재하고 폭로하는 의원들의 뉴스의 잔치를 마치 국감의 본류인양 착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소모적인 정쟁이나 일삼던 국감의 구태에 비하면 비판적인 기사거리라도 제공하는 모습이 가상치 않느냐는 사람도 생겼다.

그러나 ‘보도되는 국감’는 국정감사 그 자체가 될 수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국정을 감사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이미지 관리 행위는 국정을 감사하는 일 자체와 분명히 구별돼야 한다.

국감은 정부 및 공공기관의 임무수행을 평가하고 감사함으로써 공적인 책임을 묻는 일이다. 공적인 일이고 딱딱하고 흥미없는 일이기 십상이어서 세상의 외면을 받기 쉽다. 그렇다고 국감 현장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뉴스거리를 찾는 기자적 후각이 지배해서는 곤란하다.

우선 국감에 임하는 의원들이 뉴스거리를 찾아 나서기 시작하면, 국가의 주요 이슈가 망각되거나 왜곡된다. 언론에 보도된 뉴스가 국가적 정책 이슈와 반드시 일치한다고 볼 수 없는 것기 때문이다.

국감에서 따져야 하는 이슈는 장기적이고 사회 구조적인 문제일 필요가 있다. 반면에 뉴스거리는 단기적이고 일회성인 가능성이 많다. 국감에 등장한 이슈가 조금만 지나면 쉽사리 잊혀져 버리는 것은 국감이 뉴스 논리로 움직인다는 증거이다.

뉴스거리 찾기에 나선 국감장은 차분하고 진지하게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책을 논의하는 장소가 아니라 한건주의에 집착하는 의원들의 정치쇼 무대로 퇴색할 위험성이 있다. 이미지관리를 주요 목표로 삼는 국감장의 정치쇼는 일시적으로는 폼 나 보여고, 무언가 대단한 일을 했다는 환상에 빠질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허탈한 잔해만 남을 뿐이다. 국감이 끝나고 나면 연극이 끝난 뒤와 같은 허탈감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과열경쟁에 따른 뉴스의 오보 가능성처럼, 뉴스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국감은 터무니 없는 허위정보와 고의적으로 왜곡시킨 잘못된 분석에 시달리게 된다. 올해도 한나라당 권철현 의원이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전국 지역별 명문대 진학률 정보를 공개하고, 이를 언론이 대서특필하면서 엉뚱하게 여론만 고생했다.

권의원은 지난해 국감에서도 보수적인 교사들도 문제없다고 말한 교과서를 친북 성향이라고 몰아 소모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국감장은 국가적 사안을 과학적으로 조사, 평가하고 숙의하는 공간이지 돌출적인 사건을 폭로하고 이를 과시하는 취재보도 공간이 아니다.

의원들이 폭로할 일이 있으면 차라리 국감을 피해서 하게 하자. 아니면, 국감을 단기간에 몰아서 하느라 의원들의 정치쇼 무대로 전락시키지 말고 미국처럼 국감을 상시화하고 국감과정이 언론의 여과 과정 없이도 시민에게 투명하게 전달되게 하는 정보 공개시스템을 구축하자.

한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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