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적금은 이자율이 3% 밖에 안 되고 세금을 제하고 나면 남는 게 없지만, 주식형 적립식 펀드는 10% 이상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은행이 판매 대행을 하니 안전하고, 적금보다 100배는 낫습니다.”
회사원 정모(32)씨는 최근 정기적금을 들기 위해 은행에 갔다가 창구 직원에게서 적립식 펀드 가입을 권유 받았다. 정씨는 “주가가 너무 올라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직원은 “원래 지수가 급등하거나 폭락할 때 가입해야 펀드 수익률이 좋다”고 부추겼다. 정씨가 “그거야 장기투자 할 때 얘기 아닌가요”라고 반론을 제기하자, 직원은 금새 말문이 막히며 “알아서 판단하세요”라고 얼버무렸다.
요즘 은행권의 주식형 적립식 펀드 판매액이 급증하고 있다. 은행간 유치 경쟁이 벌어지면서 직원들의 가입권유도 극성이다. 그러나 판매 과정에서 적립식 펀드의 특성, 원금손실 가능성 등의 위험을 제대로 알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러다 보니 은행들이 ‘묻지마 펀드투자’를 부추긴다는 비난 여론이 무성하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11월 중 은행권의 펀드판매 실태를 집중 조사하기로 했다.
5일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8월말 현재 은행에서 판매된 적립식 펀드 판매잔액은 5조2,970억원으로 전체 적립식 펀드 판매잔액 9조2,420억원의 57.3%에 달한다.
이는 3월 전체 적립식 펀드 판매잔액 6조5,520억원 중 은행을 통해 판매된 적립식 펀드가 49.9%(3조2,660억원)였던 것에 비해 7%포인트나 급증한 것이다. 증권사의 적립식 펀드 판매액은 3월 전체의 50.1%(3조2,860억원)에서 8월말 현재 42.6%(3조9,410억원)로 급락했다.
문제는 투자자들이 적립식 펀드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치 정기적금에 드는 것처럼 적립식 펀드에 가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은행들은 원금손실 가능성을 알리지 않거나 자산운용협회 판매 가이드라인상 금지행위인 미래 수익률을 제시하면서까지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은행 판매직원에 대한 교육도 부실해 과거 수익률이나 편입 종목 등은 무시한 채 “요즘 제일 잘 나가는 펀드” “수익률이 제일 좋은 펀드”라는 식으로 가입을 권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적립식 펀드 판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은행 직원들이 펀드 특성도 모른 채 무조건 가입만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며 “최근 주가가 올라 분쟁이 안 생기고 있지만, 앞으로 투자손실이 날 가능성이 상당한 만큼 가입자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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