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가 아버지의 전근 탓에 타지에서 몇 해 학교를 다니다 얼마 전 고향인 서울로 돌아왔다.
아이는 그곳 초등학교 졸업식을 마치자 마자 허겁지겁 서울로 와 중학교에 입학했다. 아직 얼떨떨한 게 많은 모양이다. 기자가 평소 좀 알고 지내는 아이와 아이 어머니는 전에 다닌 학교 선생님의 편지가 힘이 된다고 한다.
‘요즘 전학 간, 그것도 졸업해버린 아이에게 편지 보내는 선생님이 있나’ 하는 호기심에 얻어 읽어보았다.
그새 다른 학교 교장으로 옮긴 선생님은 편지 첫머리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전통에 대해 잘 배워서 늠름하게 성장해 주세요”라고 선생님답게 잔소리를 했다. 편지지에 손으로 또박또박 쓰고 아이에게 존대어법을 사용하는 선생님은 “자네는 올곧지만 고지식하고 정의감도 강해 친구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았다네”라고 추억했다.
아이 부모조차 잊어버린 어느 날의 학교 방문 때 아이와 아이 여동생을 찍어둔 사진도 여러 장 동봉했다. 아이의 친구들 근황도 적고, 지금 근무하는 학교의 소식지도 함께 넣었다. 아이의 추억, 인연을 소중하게 이어주려 애쓰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그 학교 시절은 저도 처음 가족과 떨어진 3년간이어서 인상 깊었습니다”라는 선생님은 “책임 무거운 일이었지만 많은 어린이, 부모와 알게 된 것은 일생의 보물입니다”라고 자기의 고충과 즐거움도 털어놓았다. 마무리는 역시 “공부 열심히 하고, 스포츠로 몸도 다지세요. 활약과 건강을 기도하고 있습니다”라는 ‘선생님 말씀’.
다음 번 편지는 “그곳은 다들 공부에 열심이라는데, 몸 상하지 않게 조심하세요”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나도 어렸을 때 곧잘 심야방송을 들으며 새벽까지 공부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운 추억입니다”라고 넌지시 격려했다.
“학교에서 일한 지 30년 이상이 되지만 제가 만난 어린이는 모두가 훌륭한 어린이 뿐이었습니다”라며 자기가 요즘 공을 들이는 학교 장미꽃밭을 33년 전 제자가 자녀들을 데리고 보러 왔다고 자랑했다. 뭔가 동봉하기를 좋아하는 선생님이 장미꽃밭이 소개된 지역 신문과 어린이신문 기사를 편지에 함께 넣는 것을 빼놓을 리는 없다.
말미는 또 잔소리다. “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풍성한 마음과 튼튼한 몸을 만들면서 착실히 공부에 매진하기를. 자네의 성장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네.” 여기에 “자기 나라의 문화, 역사, 전통을 확실히 공부해야 합니다”는 이젠 인사말이 됐다.
이번엔 추신도 있다. “눈이 나빠졌다는데 안경을 쓰면 되는 정도인가요. 눈은 일생 소중한 것입니다.”
다른 여선생님도 따로 편지를 냈다. 이 선생님도 이미 다른 학교로 전근했다. “중학교 입학 축하합니다. 순조로운가요. 마음단단히 먹고 생활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편지를 쓰기 얼마 전 예전 학교를 찾아가 아이의 친구들을 만났다는 선생님은 “다들 늠름한 중학생이 된 것 같습니다.
‘참 잘 됐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소식을 알렸다. “중학교 공부는 더 열심히 해야 합니다”라는 선생님 말씀으로 끝나는 것은 앞의 교장선생님이나 마찬가지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서 출력하지 않고 손수 만년필을 눌러 쓴 편지라는 점도 같다.
기자가 신변이나 친지에게 생긴 일을 신문에 쓰는 것은 본디 온당한 일이 아니다. 사신(私信)을 내신 선생님들의 이름과 학교를 신문에 밝히는 것은 더욱 하기 어렵다. 다만 그 학교가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는가 정도는 알려도 괜찮을 것 같다.
학교는 일본 도쿄(東京)의 한 평범한 공립 초등학교다.
신윤석 사회부 부장대우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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