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무엇이며, 행복의 지수화는 가능할까. 최근 캐나다의 성 프란시스 자비에르 대학에선 이 문제를 놓고 일주일간 토론이 진행됐다.
10여 국가에서 온 각계 전문가 400여명이 풀어 놓은 행복론은 다양했다. 부와 명예, 만족, 환경 등 행복의 다양한 기준이 제시됐지만 명쾌한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20세기를 풍미했던 물질과 소비 지상주의가 21세기에 행복을 얻는 데 필수 조건은 아니라는 데 다수가 동의했다.
뉴욕 타임스는 4일 ‘행복한 작은 왕국의 새 행복 기준’이란 제목으로 이 토론을 다루면서 부탄이 하나의 대안으로 소개됐다고 전했다. 부탄은 세계가 국내총생산(GDP) 확대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33년째 부의 분배와 문화 전통 유지, 환경보호 같은 이상적인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1972년 16세로 왕좌에 오른 지그메 싱예 왕추크 국왕은 이를 집약해 국민총행복(GNHㆍ Gross National Happiness)이란 개념을 제시했다. 이 통제된 발전 정책으로 부탄은 아직 세계 최빈국이지만 왕까지 숲의 나무집에서 살 정도로 빈부 차가 없다. 84~98년 14년 동안 평균수명은 19년 늘어나 66세를 기록했고 교사 순환 근무를 통한 평등한 교육기회가 이뤄졌다.
국토의 60%를 차지하는 숲 보호를 위해 외국 관광객의 입국을 매년 수 천명 선으로 제한된다. 왕추크는 국민 행복이 왕보다 중요하다며 헌법에 기초한 의회 민주주의를 도입키로 하고 왕권을 내놓기로 약속했다.
뉴욕타임스는 “부탄의 사례는 10년 전만 해도 우스갯소리에 불과했다”면서 “그러나 역설적으로 우리는 넘치는 풍요의 부작용을 경험하면서 경제 성장이 항상 진보가 아니란 점을 깨닫게 됐다”고 지적했다.
학계에 따르면 통상 가난을 벗어난 초기 단계에서는 수입 정도와 행복감은 일치한다. 그러나 1인 당 소득이 1만~2만 달러를 넘어서면 행복은 부와 별개로 나타난다. 국가별로 객관적 지표와 국민이 느끼는 행복감에도 큰 차이가 있다.
미 미시간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남미 국가들은 경제지표에 비해 행복 지수가 높은 편이다. 반대로 공산주의를 경험한 국가들은 다른 국가와 수입이 동일해도 더 불행하다고 느낀다. 또 부가 어느 수준에 이르면 돈보다는 명예가 행복의 잣대로 여겨진다.
이번 토론에서 히말라야 소왕국 부탄에서 온 대표단 30여명이 전하는 ‘충만되고 만족스런 사회’에 이견이 없지 않았다. 부탄에선 여전히 가난과 알코올 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남아 있다. 99년 TV와 인터넷이 보급된 이후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사회적 긴장이 높아 가고 있다.
왕추크가 네팔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 수 만 명을 추방한 것은 부탄을 실망시킨 사건이다. 그러나 토론에 나온 부탄의 여 교사는 “부탄은 히말라야에 있다는 이상향 샹그릴라는 아니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는 것에 나는 매우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 GDP 740弗 세계 최빈 불교국가 '부탄'
부탄은 인도와 중국 티벳 사이의 히말라야 동쪽에 위치한 내륙 산악국가다. 면적 4만7,000㎢에 인구 232만명의 소국으로, 1인당 GDP는 740 달러에 불과하다.
수도는 팀푸이며, 1865년 영국의 보호국으로 있은 뒤 1949년 외교와 국방을 인도에 일임하고 독립국 지위를 획득했다. 지그메 싱예 왕추크 국왕이 33년째 통치하는 절대 군주제 국가이나 향후 의회 민주주의가 도입될 예정이다.
국민 75%가 라마교를 믿고 있으며, 부탄이 지향하는 국민총행복론의 실체도 불교적 이상론으로 평가된다. 세계 최초로 금연국가를 선언한 왕추크는 위대한 환경주의자로 통한다. 많은 점에서 독재로 얼룩진 이웃 네팔과 비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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