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라도 좋다. 이 끔찍한 생이여, 다시!’ 지독히 역설적인 니체의 경구로 마지막 방점을 찍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은 반어법을 통해 인생 예찬을 주장한다.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축복인가를 설명하기 위해 ‘내 생애…’는 눈부신 삶의 아름다움을 시시콜콜 펼쳐보이지 않는다. 대신 사랑이 있고, 시련이 있고, 좌절이 있고, 실연과 죽음의 공포가 있고, 늙음이 있기에 인생은 힘겨우면서도 살아갈 만하다는 위안을 넌지시 던진다. 그 위안은 무시하고 지나칠 만큼 가볍지도, 끌어안고 가기 버거울 정도로 무겁지도 않다.
영화 속 등장 인물들은 모두가 평균적인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온전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있어도 언제 그 가정이 무너질지 위태위태하다.
곽씨네하우스의 곽 회장(주현)은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만, 여생을 함께할 짝이 없는 외기러기다. 곽 회장이 연정을 품는 늦깎이 배우 지망생 오여인(오미희)도 과부로 쓸쓸하기는 마찬가지다.
거칠 것 없는 형사 두철(황정민)은 십 수년 데이트 한 번 못해본 숫총각이고, 매사에 당당한 의사 유정(엄정화)은 아들 양육권 다툼 때문에 골치 아픈 이혼녀다. 유정의 전 남편 조 사장(천호진)은 연예기획사 일로 돈의 노예가 된, 아들조차 멀리하는 외톨이다.
창후(임창정)는 신혼살림에 깨가 쏟아지지만 외판을 전전하며 악성 채무에 시달리고, 그의 아내 선애(서영희)는 가계에 부담이 될까 봐 낙태하려 한다.
댄스그룹의 멤버였던 정훈(정경호)은 겨우 빛을 볼 때 퇴출 당해 자살을 기도하고, 정훈을 짝사랑하는 수경(윤진서)은 수녀 서원을 앞두고 세상을 등지려 한다. 채권 추심업에 종사하는 유쾌한 남자 성원(김수로)은 첫사랑과의 사이에 사생아를 두고 있다. 대부분이 겉으로는 멀쩡하고 행복해보이면서 속사정은 불행하기 짝이 없다.
이들은 TV토론 프로그램에서 공방을 주고 받는 대담자로, 의사와 환자로, 채무자와 채권해결사 등으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인연의 자장(磁場) 안에서 만나 때론 스치고, 때론 살을 섞으며 부대낀다.
서로 남남으로 마주치지만, 사실 한 두 사람 건너뛰면 지인이다. 영화는 이들이 만나고 사랑하고 갈등하면서 그려내는 관계의 지형도를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일주일간 자세히 들여다보고, 또 멀리서 관찰한다.
그래도 등장인물이나 영화는 이런 상황에 짓눌리지 않는다. 영화는 금요일 에피소드를 제외하면 밝고 유쾌하다. 현란하게 말 펀치를 주고 받는 두철과 유정, 황혼의 사랑이 영글어 가는 곽 회장과 오여인의 아기자기한 로맨스가 로맨틱 코미디의 깃발을 세우며 가볍게 스텝을 밟듯 극의 중심을 잡는다.
그러면서도 등장 인물들이 토해내는 고통의 격한 숨소리를 외면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내 생애…’ 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여워하지 말고 즐기라’는 잠언이자 현실의 판타지이다.
일주일은 도돌이표와 같이 반복되는 삶의 최소 순환단위로 인생의 축소판이 될 수 있는 기간이다. 감독은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인물들을 정교하게 연결해낸다. 일주일 안에 여러 개의 극적 전개를 심어놓는 다중 구조의 이야기로 인생의 달콤하면서 쌉사름 함을 능숙하게 담아낸다.
충무로에서는 극히 드물게 묵직한 주제를 코미디로 맛깔지게 요리한 영화. ‘여고괴담 2’(1999)를 공동연출한 민규동 감독의 장편 복귀작이다. 7일 개봉. 15세.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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