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상주시민운동장 MBC가요콘서트장 참사는 주먹구구식 행사진행이 불러온 예고된 사건으로 드러나고 있다.
현행 공연법상 3,000명 이상 운집하는 공연에 대해서는 7일 전까지 유사시를 대비한 재해대책계획서를 관할 소방서에 제출하게 돼 있으나 이번 공연을 주관한 (사)국제문화진흥협회는 이를 아예 묵살했다. 협회 관계자는 4일 “그 같은 사실조차 몰랐다”고 말했다.
상주시가 자전거축제의 일환으로 MBC와 가요콘서트 공연계약을 체결한 것은 9월22일이었다. 10월1일 자전거축제가 시작되기 불과 9일 전이다. 상주시가 졸속 행사 진행을 자초한 대목이다.
저가 공연계약도 안전관리 부실을 가져온 주된 요인으로 지적된다. 경찰조사 결과 국제문화진흥협회는 상주시로부터 1억원을 받고 가요콘서트 등 3일간의 자전거축제 진행을 맡은 것으로 나타났다. 가요콘서트 정도의 행사를 치르는 데는 수억원이 든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행사비용에 턱없이 부족한 저가계약은 안전관리 소홀로 이어질 수 밖에 없었다.
국제문화진흥협회는 또 비영리단체이면서도 영리사업을 위해 자체적으로 설립한 유닉스커뮤니케이션사를 통해 행사를 치르면서 K경호업체에 2,000만원에 행사 경호를 맡겼다. K경호업체는 행사기간에 연 140명을 동원키로 했으며 사고 당일 50명을 가요콘서트 행사장에 배치키로 했으나 실제는 20여명만 배치한 것으로 드러났다.
2만여명의 시민이 몰릴 것으로 예상됐지만 주최측인 상주시가 투입한 안전요원도 경비용역업체 인원을 포함해 100여명에 그쳤다. 더구나 이 가운데 70여명은 이날 오전 열린 산악자전거대회 안내를 맡았던 아르바이트 대학생이었다.
MBC도 공연계약 전 현장조사 결과 ‘행사 불가’ 결론을 내렸음에도 공연을 강행함으로써 일정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MBC가 상주시청과 국제문화진흥협회로부터 ‘가요콘서트’ 유치희망과 방송녹화 및 제작지원 등에 관한 공문을 처음 접수한 것은 8월23일과 30일. 이에 따라 지난 달 7일 ‘가요콘서트’ 제작진이 현지조사를 했으나 공연대행사의 경험부족과 안전 문제 등 제반사항이 미비해 녹화가 불가능하다고 상주시 등에 통보했다. 그러나 일주일 뒤 상주시 행정국장 등 시 간부들과 국제문화진흥협회 관계자들이 MBC 서울본사를 방문해 녹화를 거듭 요구하자, MBC 측은 지난 달 22일 ‘경호 및 관객 질서유지 등 전반적인 안전관리를 상주시 책임 아래 진행한다’는 조건으로 녹화공연 계약을 맺었다.
MBC 측은 이 같은 일련의 경과를 들어 “프로그램 제작 외에 모든 공연관련 사안은 상주시와 국제문화진흥협회에서 맡아 도의적 책임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MBC 가요콘서트’라는 프로그램 지명도가 그렇게 많은 관객을 끌어들인 요인인데다, 당시 현장 상황과 이전 경험상 상당수준의 위험요소가 있음을 충분히 인지하고도 이를 간과한 것은 분명히 비판 받을 소지가 크다는 지적이다.
경찰도 이번 사고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찰은 문서상으로 병력 요청을 받지 않았고 공연상 안전관리는 주최측에서 맡게 돼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대규모 관객이 운집할 것으로 예상돼 안전사고가 우려됐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사고당일 행사현장 진행은 더욱 문제였다. 당시 행사장 내에는 초청 VIP 300명이 별도의 문으로 미리 입장한 반면 행사시작 3~4시간 전부터 몰려든 일반 시민들에 대해서는 바깥에서 장시간 기다리게 함으로써 이들의 조급증을 촉발시켰다는 지적이다.
수만 명이 몰릴 것으로 예상된 행사장 주변에 구급요원도 제대로 배치되지 않았다. 5,000여명이 몰려들어 사고가 발생한 상주시민운동장 출입문인 직3문에는 경찰과 행사진행요원이 전무했고, 경비용역업체 직원 8명만이 있었던 것으로 경찰조사결과 드러났다. 이 때문에 사고 발생 직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으며, 뒤에 서 있던 관람객들은 사고 사실조차 모른 채 계속 입장했다.
상주=정광진기자 jkcheong@hk.co.kr전준호기자 jhjun@hk.co.kr
■ "경비업체 직원 지시에 문 열어"
압사 사고 당시 운동장 안에서 문을 열어준 상주시민운동장 관리사무소 최동호(50ㆍ기능8급)씨와 김상원(49ㆍ일용직)씨 2명은 4일 “경비용역업체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씨 등은 이날 오후 5시께 운동장 안에서 정리작업을 하던 중 경비용역업체 ‘강한 경호’의 현장책임자인 이모(37)씨로부터 “5시40분쯤 신호를 하면 직3문을 열라”는 말을 들었다. 이들은 5시20분께 사무소에서 열쇠꾸러미를 들고 나와 직3문 안쪽에서 경찰관 3명과 경비용역업체 직원 4명, 학생 경비보조원 4명과 함께 대기하다 밀고 들어오려는 관람객들에게 “문을 열었다가 사고 나면 어떡하느냐”며 뒤로 물러 서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직3문 앞에 있던 경비용역업체 직원의 신호에 따라 김씨가 자물쇠를 연 시간은 오후5시40분. 바깥쪽으로 문을 열자 갑자기 인파가 몰려들었고, 최씨는 5분여 동안 꼼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문을 붙들고 서 있었다. 김씨는 황급히 뒤로 물러서 바로 빠져 나왔다.
최씨는 ”‘사람이 깔렸다’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들렸지만 경황이 없었다”며 “바로 옆에 쓰러진 할머니 한 분을 일으켜 세우고는 문 바깥쪽으로 겨우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경비용역업체는 이날 공연 리허설 종료 예정 시각인 오후5시30분에 문을 열 계획이었으나 리허설이 오래 끌면서 10분 정도 늦게 문을 열었다.
경찰은 문을 열도록 지시한 이씨와 업체 직원들을 상대로 경위와 안전사고 예방대책을 소홀히 한 점 등을 집중 조사중이다.
상주=글ㆍ사진 전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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