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비군이다. 동원 예비군 훈련을 받기 위해 멀리 강원도에 와 있다. 사격훈련을 기다리며 티없이 맑은 가을 하늘을 보다가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의 위대한 수준까지 올라간 작곡가가 또 있을까?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는 그만큼 거의 절대적이다. 인계받은 탄환을 모두 쏘고 나니 귀가 멍해지면서 한 사람이 떠올랐다.
드보르작. 얼마나 싫어했던 작곡가인가. 촌스럽기 그지없는 ‘아메리칸’ 현악사중주나 작곡하면서, ‘신세계 교향곡’으로 이름난 그 사람을 난 유난히 싫어했다.
그러다 7번, 8번 교향곡을 듣기 시작하며 그에 대한 이미지는 점차 바뀌어 갔다. 그러던 중 그의 걸작 첼로협주곡을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며 “오호, 이런 협주곡이 있다니. ‘아메리칸’과는 질적으로 다른데?" 라는 감탄을 조심스레 내뱉었던 기억이 마지막 총성과 함께 스쳐갔다. 사실 ‘아메리칸’ 현악사중주나 ‘신세계’ 교향곡은 명작임에 틀림없다. 어릴 때는 왜 그렇게 그 곡들이 어색하고 유치하게 들렸는지 모르겠다.
그가 과연 베토벤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갔을까? 그렇다. 그는 원래 훌륭한 실내악 작곡가이다. 그 유명한 ‘아메리칸’ 현악사중주가 벌써 12번이다. 번호 붙은 현악사중주가 14개나 있고, 그 외 사중주를 위한 작품도 꽤 있다. 그럼 우리는 왜 몰랐을까? 당연하다. 제목붙은 곡이 ‘아메리칸’ 달랑 하나니까.
어느덧 사격이 끝나고 트럭에 올라타 이동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입어보는 어색한 전투복에 철모를 쓰고 덜컹거리는 의자에 앉아 지나가는 경치를 보고 있자니 너무나 아름다운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소양강이라는 이름을 차라리 모르는 게 더 신비로울 정도로 경이로운 풍경에 취한 상태로 머리 속을 맴도는 13번 현악사중주를 잊을 수 없다. ‘아메리칸’ 이후에 작곡된 두 곡(Op.105,106)은 그가 조국인 체코에 돌아가 쓴 걸작 중에 걸작이다.
그가 제목을 붙이지 않은 마지막 순수음악이며, 베토벤의 경지에 올라 온갖 실험정신으로 자아낸 바로 그 작품들이다. 그의 작품번호들은 연대순으로 잘 정리되어 있지 않아 더 헷갈리게 만든다. 오늘 이 예비군이 추천하는 곡은 Op.106번이며 13번 현악사중주다.
먼저 들어보길 권하는 3악장은 누구도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스케르초를 느낄 것이다. 느리고 깊이있는 2악장을 좋아하는 분들은 이제 브루흐의 ‘콜 니드라이’ 같은 곡 그만 들으시라고 이걸 강력히 추천한다. 스메타나의 ‘나의 생애’ 3악장 보다도 웅장하고 드보르자크의 첼로협주곡보다도 감동적인 2악장. 바로 드보르작의 이름없는 13번 현악사중주다.
2박3일의 훈련기간에 끝없이 머리 속을 맴돈 드보르작의 음악은 이상하게도 강원도의 웅장한 산맥과 소름끼치게 아름다운 소양강,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한국의 가을 하늘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그는 음악을 작곡할 때 만큼은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
현악사중주단 콰르텟엑스 리더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