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유국의 오일 머니 관리 양상이 달라졌다. 1970년대 오일 쇼크 때 기름값 폭등으로 번 돈을 과소비로 흥청망청 날려버렸던 산유국들의 오일 머니 지출은 이제 과거의 일이다.
국부 유출의 쓰라린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당장의 소비보다는 국내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고 해외 부채를 상환하거나 공무원 보수를 올리는 등 내실 있는 지출이 이뤄지고 있다. 해외 투자도 수익이 될 만한 것을 꼼꼼히 따져보고 지갑을 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보고서에서 러시아, 베네수엘라를 빼고는 대부분 산유국이 70년 초 만큼 지출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2002년 이후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가량 오르면서 산유국들은 매년 1조2,000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국제금융기구(IIF)는 지난해 중동 산유국이 93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했으며 이는 중국 등 아시아 신흥 국가 전체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를 합한 것보다 많다고 밝혔다.
산유국들의 알뜰 살림이 계속되자 선진국이 볼멘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선진7개국(G7)은 지난달 재무장관 회담에서 “산유국이 고유가로 벌어들인 돈을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주요 원유 수입국의 물건을 사들이는 데 더 써야 한다”며 국제 무역 불균형이 심화하는 것이 산유국 탓이라고 주장했다. 과거 산유국이 국제 금융 및 무역 시장에 풀어놓은 오일 달러의 수혜를 입었던 그들로서는 ‘똑똑해진’ 산유국이 원망스러울 따름이다. IMF도 현재 국제 무역 불균형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은 산유국이 오일 달러를 더 푸는 방법 뿐이라고 압박했다.
그러나 산유국은 각자 갈 길을 가겠다는 자세다. 산유국 1위 사우디아라비아는 2010년까지 1,000억 달러를 지출할 예정인데 대부분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를 키우는 데 쓸 것으로 보인다. 또 공무원 봉급을 15% 올리고 주택 건설비와 교육비도 더 늘릴 계획이다. 2위 산유국 러시아는 외환보유고 확대에 1,560억 달러, 안정적인 돈줄이 될 정유회사의 국유화 비용으로 300억 달러를 쓸 복안이다.
아프리카 최대 산유국 나이지리아는 오일 머니 중 절반으로 예산 적자를 메우고 심각한 전력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발전소 7개를 새로 짓는 데 300억 달러를 지출키로 했다.
대 미국 원유 수출 1위 나라 베네수엘라는 오일 달러를 ‘반미 노선 확대’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쓰고 있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은 300억 달러에 이르는 외채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국가에 제공하는 원유가격을 대폭 낮추면서 호감 사기에 적극적이다.
반면 선진국을 비롯한 석유 수입국은 거세지는 소비자들의 유류 관련 세금삭감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EU 25개국은 연합전선을 구축해 공동 대응키로 했지만 벌써 폴란드와 헝가리(연료세 삭감) 벨기에(가정용 난방연료에 보조금) 등이 이탈했다
홍석우 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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