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저가발행이 업무상 배임이라고 판결하며 당시 이를 주도했던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대기업의 편법상속 관행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40여명의 법학교수들이 삼성의 변칙상속을 고발한 지 5년3개월, 검찰이 공소시효를 하루 남겨두고 부랴부랴 관련자들을 기소한 지 1년10개월 만에, 또 그동안 재판부가 바뀌는 우여곡절 끝에 나온 이 판결은 사법적 의미 이상의 사회적 파장을 예고한다.
그런 만큼 당사자들은 들뜨거나 실망하기에 앞서 판결의 취지를 잘 살피고 새로운 시대규범을 세워가는데 머리를 맞대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건의 발단은 1996년 에버랜드가 삼성계열사를 대상으로 CB를 발행했으나 인수를 포기하자 실권주 125만여주를 이재용씨 등 이건희 회장의 4남매에게 주당 7,700원에 넘긴 것이다.
이에 대해 고발인 등은 당시 에버랜드 주식의 장외시장 가치가 8만5,000원 이상이었다며 ‘헐값 인도=편법 사전상속’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측은 관련 법규에 따라 실권주를 재용씨 등이 인수한 것이고 가격산정도 비상장주식의 관례에 따른 것이라고 맞서왔다. 또 배임혐의가 있다면 CB인수를 포기한 계열사 몫이지, 에버랜드는 무관하다는 논리를 펴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주주배정을 가장했을 뿐, 재용씨에 대한 증여목적으로 CB를 발행했고 그 결과 인수대금과 납입대금의 차이 만큼 재용씨 남매에게 이득을 주고 그 만큼 회사에 손실을 끼친 사실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CB 발행 당시 비상장주식에 관한 법령이나 판례가 없었던 점 등은 양형 감안사항일 뿐 실체적 사실관계를 뒤엎지 못한다는 것이다.
물론 1심 재판이 끝은 아니고 이후 검찰과 삼성의 법리논쟁은 한층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은 이 회장 등 삼성의 공모관계 규명으로 수사를 확대할 태세다.
그러나 분명히 해 둘 것은 이번 판결이 삼성의 지배구조 투명성 및 사회적 책임을 일깨우고 바로잡는 계기가 돼야지, 무책임한 공격의 재료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법부의 고심은 곧 우리 모두의 고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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