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길이 열린 지 얼마 안 돼 그곳에 다녀온 적이 있다. 겨울 금강산은 섬세한 풍경들이 모여 장엄한 모습을 이루고 있었다. 기교적이고 현란한 필치로 그린 듯한 폭포와 계곡이 모두 얼어붙어, 차라리 냉엄해 보였다. 차창 밖으로 스친 동네 남정네들은 대부분 무반응으로 일관했으나, 여인들은 추위 속에도 미소와 함께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소년들은 달랐다. 손을 흔드는 아이도 있었지만, “잘 있어라” 하는 우리에게 “잘 가라, 이 미제(美帝)야” 라며 주먹을 휘두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왕래 잦을수록 불신 줄어
어떤 반응을 보이든 그들과 그 사회에 드리워진 궁핍과 남루, 체념과도 같은 무(無)희망의 표정들은 가려지지 않았다. 돌아와서도 한동안 그쪽 지도층에 대한 실망과 원망, 동포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무겁고 아팠다.
오히려 어린이다운 기백으로 주먹을 휘두르던 모습이 한 가닥 위안으로 남았다. 그러면서도 다녀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현지에서의 느낌은 얼마나 확실하고 강렬했던가.
1998년 금강산에서 시작된 뒤 개성, 백두산 등으로 북한 관광 길이 넓어졌다. 많은 남녘 사람이 다녀왔고, 또 체육선수와 응원단 등으로 북쪽 사람들의 남행도 잦아졌다.
금강산 관광객을 제외하고도 올 1월부터 8월까지 매달 6,000명 이상의 남쪽 사람이 북한을 다녀왔다. 만족할 수준까지는 아직 멀지만 남북 이산가족 상봉도 여러 차례 이루어졌다. 왕래가 잦을수록 불신이 줄고 믿음이 쌓여감은 자명한 일이다.
지금 북한을 지원하는 민간단체의 회원 몇 천명이 이달 말까지 북한 방문길에 오르고 있다. 공연 ‘아리랑’을 관람하고, 대북지원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후 평양의 문화유적을 답사하기 위해서다.
당초 9,000여 명으로 알려졌으나, 숙박시설 관계로 인원이 5,000명 정도로 줄 것 같다고 한다. 노동당 창건 기념일(10월 10일)에 맞춰진 ‘아리랑’은 체제 찬양 카드섹션이 포함된 1시간 20분 분량의 집단체조ㆍ예술공연이다.
보수 신문들은 한결같이 이 대규모 방북 관광을 폄하하거나 반대하거나 나무라고 있다. 비싼 경비를 들여 북의 선전극에 박수 치러 가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방북의 주목적이 ‘아리랑’ 관람은 아닐 것이다. 자신들의 대북지원사업이 현장에서는 실제로 어떻게 도움을 주고 있나를 확인하고, 그 김에 ‘아리랑’과 문화유적을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아리랑’ 관람료가 50~300달러라니 작은 돈은 아니다. 하지만 남쪽에서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보는 비용과 다르지 않다.
’아리랑’은 1만 8,000명이 등장하는 카드섹션을 포함한 초대형 집단 공연이다. 규모나 화려함에서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특별한 공연이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그 선정성에 현혹되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그것은 전체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그들의 문화이고 삶의 방식일 뿐, 우리는 차라리 외양의 거대화려함에서 내적인 공허함을 볼 것이다.
그게 무어란 말인가. 베이징에서 현란한 중국 교예단 공연을 본 적이 있다. 특별한 볼거리이긴 했으나, 마음 한 구석이 영 편치 않았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규격 속에 구부려 넣고 조이는 듯한 답답함을 떨칠 수 없었다.
●대형 선전극 본다고 현혹 안돼
설령 ‘아리랑’ 공연에 큰 기대를 걸고 가더라도, 그것을 훈수하는 것은 국민을 비하하거나 독선적인 일이다. 남을 북처럼 폐쇄사회로 이끌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제 공연 한 편 관람했다고 북 체제 찬양자가 되는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남북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느껴야 한다.
남북이 열린 자세로 이해를 넓히고, 서로에게 발전적 영향을 주는 것이 긴요하다. 가 보면 다행히도 우리 사회가 그곳과 같지 않다는 것을, 또 무언가 돕고 싶다는 인도주의적 충동을 느낄 것이다. 선의의 방북 길을 막지 마시라.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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