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이상 끌고 있는 사립학교법 개정안 처리가 진통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해 10월20일 열린우리당이 국회에 낸 사학법 개정안은 찬반양론의 사회적 갈등만 유발했을 뿐 진척이 없다. ‘4대 개혁법안’의 하나가 애물단지가 된 듯한 양상이다.
보다못한 김원기 국회의장이 “여야 합의처리가 안되면 본회의에 직권상정하겠다”고 최후통첩을 했지만, 여야는 현격한 의견 차이만 노정하고 있다. 여야는 김 의장이 정한 상임위 처리시한(9월16일)을 결국 넘겼다.
김 의장은 직권상정을 않고 정치권에 1차례 더 기회를 줬다. 합의 처리시한을 10월 19일로 연기한 것이다. 사실상의 최후통첩이다. 이 기간까지 여야가 해당 상임위인 교육위원회에서 처리하지 않으면 본회의에서 표결처리하겠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결과는 난망하다. 여야가 ‘최대공약수’를 도출할 가능성은 여전히 희박하다. 이해 당사자인 사학법인측이 개정안 처리시 헌법소원 제기와 함께 폐교 등 정면 승부를 선언하고 있는 것도 간단치 않은 대목이다.
■ 쟁점과 전망
여야 정치권
사학법 개정안에 대한 쟁점은 크게 2가지. 개방형이사제 도입과 학교운영위원회(학운위) 심의기구화가 그것이다. 열린우리당은 학운위와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하는 인사를 학교 이사의 3분의 1 이상 참여 시키는 개방형이사제는 학교 경영투명화의 지름길이라며 한나라당측에 수용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생각은 다르다. “사실상 노조를 사학 경영에 집어넣겠다는 의도”라며 반대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개방형이사제 대신 현행 임시이사를 공영이사로 이름을 바꾸고, 이사 선임시 학운위와 평의원회에 3분의 1 추천권을 부여한다는 자체 개정안을 제시했다.
학운위 심의기구화에 대해서도 여당은 “민주적인 학교 운영 방안”이라고 유도하지만 야당은 “학교를 정치판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라며 펄쩍 뛰고 있다.
이밖에 교원인사위원회 및 교원징계위원회 구성도 여당은 “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야당은 “지금 상태로도 문제가 없다”며 냉소적이다.
사학법인ㆍ사학국본
사학법 개정안 처리 저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학연 측은 지난 6월 서울 여의도에서 사학 관계자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투명사회협약식을 갖고 사학 자정을 결의한 이후 활동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8월에는 사학 비리와 부정을 자율적으로 막기위한 사학윤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지난달 12일부터 이틀 간격으로 부산 등 대도시를 돌며 지방사학 자정대회를 연데 이어 4일에는 제주에서 전국 사립학교 행정실장 투명사회협약식을 개최한다.
사학연은 “창학 이념을 구현하려는 사학들이 자정 노력에 착수한 만큼 개정안 처리는 2년간 유보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종교단체에서도 개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국기독교단체총연합회가 최근 국회의장에게 사학법 개정 2년 연기 청원을 냈고, 조계종 등 불교계 7개 종단도 비슷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맞서 사학국본은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직권상정 해 표결처리 하라”며 개정안 처리를 재촉하고 있다. 전교조가 지난 달 5일부터 16일까지 사학법 개정 관련 공동수업을 실시했으며, 앞서 교수노조는 지난 6월의 ‘사학법 개정 1,000km 국토종단 대장정’ 등의 행사로 국민의 여론을 모으고 있다.
전망
여야 합의가 요원한데다, 26일 국회의원 재ㆍ보궐선거를 앞두고 있어 김 의장이 쉽게 직권상정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개정안 찬반을 놓고 오락가락하고 있는 여론의 향배도 김 의장으로서는 직권상정이라는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대목이다. 교육계에서는 "사학법 개정안이 장기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현재로서는 '다수의 전망'이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 외국선 어떻게
사립학교 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는 성문법을 통해 사학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고 있다. 다만 사학에 대한 국가의 규제 양상은 동ㆍ서양이 다소 차이가 있다.
근대 교육의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동아시아 국가들은 우리의 사학법과 유사한 별도의 법률을 통해 사학의 설치, 운영에 대해 비교적 세세하게 개입을 하는 반면 사학의 전통이 깊은 미국과 유럽의 국가들은 헌법에 ‘사학의 자유’를 규정해 사학의 권리와 의무를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공적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
일본의 사학법은 학교 임원 중 3촌 이내의 친족을 1인 이내로 제한하고 정부가 학교법인에 대한 광범위한 감독권을 갖는다는 점에서 우리와 유사하지만 재단 이사장이 학교장을 겸직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또 교직원, 동문 또는 일정액 이상 기부자들로 구성된 평의원회가 학교운영에 대해 보고를 받고 의견을 낼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중국, 대만도 사학법을 통해 사학의 법적 의무와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 특히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횡령, 졸업장 위조 등 심각한 비리가 발생한 사학에 대해서는 허가취소는 물론 형사책임을 묻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반면 서구 대부분의 국가는 ‘사학의 자유’를 헌법에 보장하고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 하고 있다. 독일은 사학의 자유를 ‘부모가 자녀를 원하는 학교에 보낼 수 있는 권리’의 하나로 인정하며, 독일연방헌법 제7조 제4항에 의해 보장하고 있다. 또 사학의 자유 보장을 통해 국가의 교육 독점을 부정한다는 점도 특색 있다.
미국은 별도의 사학법이 없는 대신 ‘법인설립법’을 제정해 놓고 사학에 일반적 법인의 법적 지위를 부여해 폭 넓게 자율을 보장하고 있다.
전성철 기자 foryou@hk.co.kr
■ 조용기 사학법인연합회 회장
“여당이 추진하고 있는 사학법 개정안은 근본적으로 사학을 매도하고 있는 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조용기(사진) 회장(80)은 “사학법 개정안을 거부함으로써 사학이 갖고 있는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집단 폐교 신청과 함께 헌법소원을 낼 것이라는 방침도 변함이 없다고 전했다.
조 회장은 개정안 마련을 주도한 여당이 사학의 공(功)은 제쳐둔 채 과(過)만 부각시키면서 사학법을 밀어붙이려는 데 대해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모든 사회 분야는 공과가 있기 마련인데,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제대로 가리는 절차도 없이 우격다짐으로 사학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도 폈다.
그는 사학법 개정안의 가장 큰 독소조항은 ‘개방형 이사제 도입’이라고 말했다. 학교 실정을 모르는 외부 인사가 경영에 참여할 경우 구성원간의 갈등 등 부작용만 낳게 된다는 주장이다. 학교운영위원회를 심의기구화 하는 부분 또한 평위원회와 함께 의사결정기구의 이원화로 혼란만 부채질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 회장은 특히 “여론조사에서 사학법 개정안을 합의 처리해야 한다는 응답이 67%로 나타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사학 자정은 사학 스스로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세중 변호사, 송월주 스님, 서경석 목사 등 이른바 ‘대쪽 인사’ 6명으로 8월 발족한 사학윤리위원회가 사학비리 근절을 책임지기로 한 이상 개정안 논의는 최소 2년은 중단돼야 한다는 기대로 내비쳤다. 사학의 자율정화 성과를 본 뒤 개정안을 다시 논의해도 늦지 않다는 의미다.
조 회장은 “나라 발전에 기여한 장군(사학)에게 훈장을 주지 못할 망정 불명예 퇴진시키는 일은 없어야 하며, 사학의 자정 노력은 이미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사학법인연합회측은 현재 사학윤리위원회를 통해 비리의혹이 있는 일부 사학을 내사중인 것으로 알려져 결과가 주목된다.
김진각 기자 kimj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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