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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청계천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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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청계천은 흐른다

입력
2005.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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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도심에서 자연으로 가는 탈출구를 찾았다. 콘크리트에 갇혀 질식해 있던 청계천에 맑은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물가 양쪽으로 산책로가 생기고 작은 생물이 사는 풀밭도 꾸며졌다.

지나치게 생색을 내는 느낌도 있으나, 청계천을 부활시킨 것은 이명박 서울시장의 업적이다. 1960년대 청계천 복개공사를 맡은 현대건설의 사원이었던 그가 다시 콘크리트를 뜯어내는 작업을 한 것이다. 당시의 복개공사는 무엇이었고, 지금의 복원작업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 사회가 압축성장의 딱딱한 외피를 벗고 성충으로 변모하는 중인 듯하다.

▦ 청계천 위에 배오개다리, 맑은내다리, 버들다리, 두물다리 등 살가운 우리말 이름의 다리들도 세워졌다. 누군가 그 다리 위에서 아폴리네르의 시 ‘미라보 다리’를 읊을 지도 모른다.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세월은 흐르고 나는 남는다/ 사랑은 흘러간다, 이 흐르는 강물처럼/ 사랑은 흘러간다…>

파리시 복판을 가로지르는 센강과 청계천을 비교하는 것은 물론 무리다. 그러나 청계천 다리에서 파리 사람들이 미라보ㆍ퐁네프다리, 루브르박물관 등의 아름다운 ‘센강 문화’를 창조한 사실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 파리 중심가를 청소하는 것은 센강의 물이다. 센강의 물을 아침마다 끌어올려 도심으로 흐르게 함으로써, 예술의 도시 파리시는 세수한 것처럼 싱그러워진다. 태종 때 만들어진 청계천은 영조시대에 이르러 바닥에 흙이 엄청나게 늘어, 바닥을 파내는 준천(濬川) 대공사를 벌였다.

영조는 지혜로운 임금이었으나 준천으로 만족했다. 자연생태와 미학을 고려하여 복원시킨 이 시대인들은 단순히 하천을 정비한 영조보다 현명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 하지만 청계천 3가쯤에서 북쪽으로 나서면 도시의 얼굴이 또 달라진다. 서울의 대표적 거리 종로가 거기부터는 ‘걷고 싶은 거리’가 아니다. 온갖 행상 때문에 동대문까지는 인도인지 시장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서민의 삶이 딱하지만, 서울시가 풀어야 할 숙제다. 나아가 국토 전체는 얼마나 어지러운가.

청계천은 말 없이 흐르며 많은 것을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인간 삶의 조건에는 다른 생물과 공존할 환경이 있어야 한다는 교훈이다. 또한 국토에는 기능 뿐 아니라 정서적 위안을 줄 미학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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