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그들(Sie)과 우리(Wir)’의 벽은 여전히 높고 두텁다. 3일은 독일 통일 15주년. 기념행사가 열린 브란덴부르크주 포츠담을 비롯, 독일 각지에선 축제보다 스산하고 뒤숭숭한 분위기가 맴돌고 있다.
DPA통신은 이 같은 분위기가 지난달 치러진 총선의 여파 탓이라고 진단했다. 이 통신은 “선거는 동ㆍ서독의 민심이 둘로 쪼개져 있고, 철의 장막 시절부터 이어진 이질감이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전했다. 통신은 동독지역에서 좌파연합의 선전하고 동독 출신 기민당 당수 앙겔라 메르켈이 고전한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고 지적했다.
좌파연합은 총선을 앞두고 급히 만들어졌음에도 동독 지역에서 25.4%를 득표율을 기록, 사민당(30.5%)에 이어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서독 지역에서는 득표율 4.9%에 그쳤다. 독일 안팎에서 ‘동독 출신 첫 여성 총리’에 대한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메르켈 당수는 ‘3석 차 승리’라는 기대 이하 성적표를 받았다. 현지 언론은 이를 두고 “메르켈이 동독에서 버림 받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기민-기사련은 동독에서 득표율 25%로 3위에 그쳤다. 반면 서독 지역에서는 37.5%로 1위를 차지했다.
마음의 벽은 바로 주머니 사정에서 비롯됐다. 독일 정부는 가난한 동독과 잘 사는 서독의 차이를 줄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1990년 통일 이후 매년 국내총생산(GDP)의 5%에 이르는 800억 유로를 동독의 공장과 주택 건설, 사회복지 비용 등에 썼다. 심지어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재정적자 규모를 최대 GDP의 3%로 제한하는 ‘안정ㆍ성장 협약’을 어기고 EU재정 분담금을 반으로 줄이면서 동독 살리기에 나섰다. 그 결과 96년까지 옛 동독 지역이 서독 지역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 때 동독의 임금 수준은 서독의 80%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4분의 1에 불과하다. 동독 지역 실업률이 서독 지역의 2배(올해 9월 기준 동독 지역 18.4%, 서독 지역 9.9%)를 기록하는 등 양측의 격차는 다시 벌어지고 있다. 이는 통일 비용의 75%이상을 기반 시설 확충 등 장기적 투자에 쓰지 않고 급한 불을 끈다며 사회 복지 비용으로 써버렸기 때문이다.
서독 지역도 불만으로 가득 찼다. 통일 이후 내수 시장이 넓어질 것이라 기대했지만 오히려 독일 전체를 망쳤다고 비난한다. 에드문트 슈토이버 기사당 당수는 ‘동독 출신들은 하는 것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것을 바란다’고 비꼬면서 서독 주민을 자극했다. 좌파연합도 ‘통일이 되면 서독처럼 잘 살 것’이라는 기대를 배반 당한 동독 주민의 불만을‘우리는 2급 국민’이라고 부추겼다.
통일 독일의 앞날이 금세 밝아질 것 같지는 않다. 만프레드 스톨프 독일 건설교통부 장관은 지난 주 ‘통일 15주년 보고서’를 내놓으며 “동독 지역의 실업률을 낮추고 젊은 층이 더 이상 고향을 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15년이 더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공영 도이체벨레 방송은 “통일 후 정치ㆍ경제에서 유럽을 이끌었던 독일의 영향력도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며 “동독 끌어안기에 실패한 독일 사례는 옛 공산권 지역으로 확대를 꾀하는 EU의 계획에도 차질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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