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으로 숨진 전향 장기수 정순택씨의 주검이 북한에 인도됐다. 정부는 정씨가 숨지자 즉각 북한에 사실을 알려 의사를 타진했고, 북한의 요청을 받은 즉시 송환에 나섰다. 적절한 조치라고 평가할 만하다.
정부는 앞서 혼수상태에 빠진 정씨의 임종을 북한의 가족들이 지켜볼 수 있도록 서울 방문을 허용했으나 시간이 촉박해서 실현되지 못했다. 죽음을 앞둔 장기수의 북한 가족 면회를 허용한 것이나 즉각적 시신 송환이 모두 처음이어서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우리가 정씨의 시신 송환에 의미를 두는 것은 거창한 역사적, 이데올로기적 관점 때문이 아니다. 그의 삶이 어떠했건, 주검을 가족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최소한의 인도적 요구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질 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했다. 그의 삶과 죽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의 존재조차 논란이 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역설적으로 가장 뚜렷한 성숙의 증거다.
우리는 이번 시신 송환을 보며 형식적 전향 여부와 무관하게 미송환 장기수가 더 이상 대북 정책의 볼모가 될 수 없는 현실을 새삼스럽게 확인했다. 북한의 대남 선전 활용을 두려워 할 이유도, 굳이 그들의 ‘전향’으로 정당화해야 할 체제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 정도의 대북 자신감이 이미 사회 전체에 충만해 있다. 이번 송환을 보며 납북자나 국군 포로 가족은 더욱 착잡한 마음이겠지만 우리의 자신감이 흔들리지 않는 한 이런 조치야말로 이들의 간절한 가족 재회 희망을 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정부는 앞으로도 비슷한 조치를 검토할 방침이라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향 여부를 불문하고 장기수 본인의 의사에 따르는, 근본적 해결책을 다듬어야 한다. 북한의 실체를 인정한 마당에 ‘형기’가 끝난 ‘북한인’을 잡아둘 아무런 실익이 없는 데다 소모적 논란만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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