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자산의 대이동이 시작된 것인가. 8ㆍ31부동산 대책 이후 관망세를 보이던 부동자금이 지난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특판예금과 주식형 펀드 시장에 대거 흘러 들어가고 있다.
일정기간 한정 판매하는 고금리 금융상품인 특판예금에는 보름 만에 8조원 가까운 자금이 유입됐으며, 주식형 펀드 수탁액도 최근 하루 평균 1,800억원씩 불어나고 있다. 증권사 지점과 은행PB(프라이빗뱅킹) 창구에는 자산포트폴리오 수정을 위한 ‘큰손’들의 상담이 잇따르고 있다.
부동자금이 일차적으로 눈독을 들인 곳은 ‘안전한’ 은행권 특판 예금. 2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 기업 농협 신한 외환 우리 조흥 하나 한국씨티 SC제일은행 등 10개 주요 시중은행이 지난달 중순부터 시작한 1년 정기예금 특판 경쟁에서 유치한 금액은 7조6,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6개월 미만 단기성 예금(약440조원)의 2%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하루 평균 1조3,000억원의 자금이 특판예금으로 흘러 들어온 셈이다.
부동자금의 다음 목표는 사상 최고 호황을 누리고 있는 증시다. 아직 고객예탁금 등 직접투자 자금이 본격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은 아니지만, 간접투자상품인 주식형 펀드 등을 통해 뭉칫돈이 유입되고 있다.
자산운용협회 등에 따르면 주식형 펀드는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달 15일 하루에 2,370억원이나 늘어난 것을 시작으로 지난달 28일까지 총 1조6,010억원이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9영업일 동안 하루 평균 1,779억원의 자금이 들어온 것이다. 9월1~14일 하루 평균 증가액이 358억원이었던 것이 15일 이후 거의 5배로 늘어난 셈이다.
이에 따라 지난달 말까지 주식형 펀드 수탁액 전체 규모가 17조원을 넘어섰다. 종합주가지수는 1,200포인트를 돌파한 뒤에도 ‘펀드의 힘’으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자산 배분에서 주식 비중을 늘리겠다는 ‘큰손’들의 상담도 잇따르고 있다. 굿모닝신한증권 삼성역지점 이병국 지점장은 “부동산 시장을 기웃거리던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며 “주식시장에서 5억원 정도를 굴리던 한 투자자가 최근 50억원까지 자금을 늘린 사례도 있다”고 전했다.
한 증권사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최근 여러 명을 대상으로 한 투자설명회가 아닌 1~2명의 거액 고객에 대해 개별적으로 증시전망 및 자산배분 상담을 해 달라는 요청도 들어온다”고 밝혔다.
특판예금이나 증시에 돈이 몰리는 것은 최근 주택가격이 안정되고 시중 금리가 급등해 채권형 펀드 수익률이 크게 나빠진 반면, 은행들이 고금리 상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주식시장도 연일 랠리를 이어가면서 큰손들의 ‘자산 재배분’이 시작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최근 투신권으로의 신규 자금 유입 강도는 적립식 펀드 활성화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다”면서 “뭉칫돈의 시장 유입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증권 차은주 연구원은 “부동산 채권 등의 투자 메리트가 반감되거나 기업경기 호전을 예상하고 흘러 들어오는 자금이 상당수인 만큼, 주식시장이 급격하게 꺼지거나 경기지표가 시장의 기대치 이하로 약화되지 않는다면 당분간 이런 흐름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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