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을 따라 걸어가며 내 마음 속에서도 시냇물이 흐르는 것을 느낀다. 시냇물은 마음의 먼지를 깨끗하게 씻어준다. 지쳤던 서울, 지쳤던 시민들이 생기를 되찾고 있다. 물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구나, 그래서 생명수라고 하는구나 새삼 깨닫는다.
청계천 축제 속에서 우리는 몇 가지 생각과 마주치게 된다. 하나는 이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새삼스런 깨우침이다.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왜곡시켜 나가면 생존마저 위태로워진다는 교훈을 청계천에서 되새긴다.
청계천의 생태가 되살아나는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어제까지 아스팔트로 덮여있던 곳이라는 사실이 거짓말 같다. 물이 흐르자 잉어 송사리 미꾸라지 버들치 등이 찾아와 헤엄치고, 청둥오리 백로 황조롱이가 날아들고, 억새와 갈대가 왕성하게 자라고 있다. “여긴 원래 우리가 살던 곳이에요. 이젠 우리를 쫓아내지 말고 같이 살자구요”라고 그들은 말한다.
조선시대의 청계천엔 맑은 물이 흘렀다지만 청계천은 사실 오랫동안 서울의 골칫거리였다. 주변의 생활오수가 흘러들어 썩어가고,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이 넘쳐 범람하기 일쑤였다. 1958년부터 시작된 청계천 복개공사는 당시의 숙원사업이었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진행된 청계천 복개와 고가도로 건설은 개발의 상징이기도 했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 아래 오물이 흘러 넘치는 개천을 복개하여 위생과 수해 문제를 해결하고, 확 뚫린 차도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일거양득의 근대화 사업이었다.
사십여 년 만에 청계천을 복원하여 서울의 도심으로 생명수가 흘러가게 하면서 우리는 시대의 변화를 절감하고 있다. 개발의 시대는 가고 자연과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청계천을 찾아온 물고기 한 마리, 새 한 마리, 풀 한 포기가 우리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다른 하나는 리더십에 대한 생각이다. 2002년 시장 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을 공약했던 이명박 서울시장은 마침내 복원을 성공시킴으로써 인기가 치솟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그는 다음 대통령감으로 박근혜를 제치고 2위로 올라갔는데, 1위인 고건과의 격차도 크게 좁혀졌다. 한 외신은 “이 시장은 청와대로 가는 열쇠를 개천에서 줍게 될지도 모른다”고 썼다.
정쟁으로 지새우며 되는 일이라곤 없는 한국의 무능한 정치에 절망한 국민들이 청계천 복원을 밀어붙인 이명박 시장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이 시장은 말이 아닌 실천으로 뭔가 해내는 정치인상을 보여줬다. 그러나 청계천 신드롬을 과대평가하고 너무 오래 취해 있는 것은 국민에게나 이 시장에게나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 시장은 정치에 투신하기 전 건설업계에서 일했다. 건설업이 그의 평생직업이었으니 청계천 공사는 사실 그의 전공과목이다. 주변 상인들을 설득하고 공기를 앞당기는 것 또한 이시장보다 더 잘할 사람을 찾기 어렵다. 그는 지금 전공시험에서 합격점을 받은 것에 불과하다. 본격적인 리더십 시험은 아직 멀었다.
서울시장은 대통령보다 못한 자리인가. 서울시장은 대통령을 지내고도 한번 해 볼 만한 자리라고 말하는 정치인이 있었는데, 이시장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는 취임 후 서울을 재정비하고 아름답게 하는 많은 일들을 했다. 그러나 그 모두를 “대권 욕심 때문”이라고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 자신도 대권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 시장이 만일 “서울시장 선거에 다시 도전하겠다. 나에게는 아직 서울을 위해 할 일이 많이 남아있다. 그것이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중요하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멋질까.
지난 1일 저녁 청계천 통수식 행사에 이 시장 내외는 한복차림을 하고 나타났다. 그 차림은 자신이 청계천 복원의 주인공임을 내외에 과시하면서 대통령에 도전하겠다는 꿈을 천명하는 신호탄으로 읽혀졌다.
아름다운 청계천에 정치적 의도를 덧칠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 시장은 물론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장 청계천에서 열쇠를 주우려는 조급함은 갖지 말아야 한다. 청계천은 대권이 아니라 생명에 관해 이야기하며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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