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개천절 특집/ 우리신화가 다시 숨을 쉰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개천절 특집/ 우리신화가 다시 숨을 쉰다

입력
2005.10.02 00:00
0 0

불과 3,4년 전 만해도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의 이름과 계보를 꿰뚫어도 우리의 신화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어릴 적 교과서나 동화를 통해 접한 우리 신화가 재미 보다는 학습에 더 큰 의미를 두어 거리감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서양 신화 못지않은 판타지의 세계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과 함께 우리 신화가 만화 PC게임 TV드라마 등 대중문화의 주요한 소재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 신화가 풍부한 서사적 요소를 갖춘 데다 민족의 역사를 바탕으로 상상력과 자긍심을 자극할 수 있는 요건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응원단 붉은 악마가 사용한 휘장의 그림으로 우리에게 익숙해진 치우천왕(蚩尤天王)은 요즘 게임과 판타지 소설 등에서 각광 받고 있는 신화.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따르면 치우는 배달국 14대 천왕으로 109년간 나라를 다스리며 중국의 신농(神農)을 패퇴시킨 인물이다. 구리 머리에 쇠 이마를 가졌으며 쇳가루와 모래를 먹는 것으로 묘사된다.

환단고기에 대한 위서(僞書) 논쟁과 함께 이설이 분분하지만, 치우는 우리 신화 속 인물로 인식되어 가고 있다.

외세에 맞서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전쟁의 신 치우는 PC게임에서 특히 사랑 받는 소재다. 2003년 첫 선을 보인 온라인 게임 ‘칼 온라인’이 치우를 다룬 대표적 게임이다.

상고시대 치우천왕과 헌원의 대결을 주 내용으로 청룡 주작 백호 현무 등이 등장해 우리의 설화나 신화를 풀어내고 있다. 인간형 로봇의 전투를 다룬 플레이스테이션2용 일본의 액션게임 ‘아머드 코어 넥서스’ 한국판에도 치우천왕 로봇이 등장해 우리의 신화를 되살리고 있다.

문화 상품 소비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판타지로서의 요건을 갖춘 치우천왕은 소설과 만화의 소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퇴마록’ 시리즈로 800만부의 판매고를 올리며 한국 판타지 소설 시대를 연 이우혁의 ‘치우천왕기’는 치우의 활약을 전면에서 다루고 있다.

중국 황제와 치우가 벌인 10년 전쟁을 6권의 책에 펼쳐내고 있다. 1950, 60년대 인기만화 ‘라이파이’의 작가 김산호도 치우를 소재로 우리의 상고사를 담은 신작을 준비 중이다.

치우천왕이 대중문화의 주요한 소재로 떠오르면서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은 대원디지털엔터테인먼트와 손잡고 ‘문화원형 활성화 시범 사업’의 하나로 치우천왕전기를 콘텐츠로 개발하고 있다.

2년간 치우천왕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캐릭터를 만들어내 일정한 사용료를 내면 만화, 애니메이션, 온라인 사이트 등에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최근 일고 있는 우리 신화 붐은 정사(正史)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TV드라마의 내용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광개토대왕의 일대기를 담아 내년 9월 방송 예정인 대형 사극 ‘태왕사신기’는 단군의 건국신화를 판타지 형식으로 차용해 다룰 계획이다.

단군의 자손으로 태양의 기운을 타고 난 해모수가 고구려 시조 고주몽과 광개토대왕으로 환생하는 모습을 보여줘 자칫 딱딱하게 느껴질 극적 구성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준다.

고구려의 건국신화는 6일 개막하는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포스터 ‘유화 자매도’서도 되살아 난다. 이만익 화백이 그린 ‘유화 자매도’는 물의 신 하백의 딸로 천신의 아들 해모수와 사랑에 빠진 유화를 통해 고구려인의 웅혼을 표현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영화제가 세계로 도약하는 발전의 기틀을 만드는 일에 유화자매의 자유롭고 강건한 기상이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 단군조선史 시·공간差 좁힐까

단군조선이 사실이냐 아니냐를 둘러싼 학자들의 대립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상고사의 복원’을 외치며 이른바 재야사학계에서는 줄기차게 기원전 20세기를 훌쩍 넘어서는 한민족 대제국사를 주장하고 있다.

실증과 고증을 앞세우는 강단 학자들은 이런 주장이 근거가 부족하거나, 위작일 가능성이 큰 사료에 바탕한 허구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평행선을 달릴 것 같은 이런 대립에 최근 의미 있는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하나는 강단 학계가 공식으로는 처음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을 경청하는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단군의 실존을 주장하는 북한 역사학계와 남한 학계의 고조선사 공동 연구가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양쪽의 의견이 얼마나 좁혀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 미답의 경지로 남아 있는 우리 고대사를 밝히는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하다.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지난달 23일 국편 국사관 대강당에서 ‘고조선사의 제문제’를 주제로 학술토론회를 열었다. 그 동안 단군조선이 실사(實史)라고 주장해온 대표적인 재야사학자들이 발표자로 나서고 고대사를 전공한 강단사학자들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국편이 “그동안 재야사학자들이 국사학계의 학술회의에 토론자로 참가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으나 재야사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직접 발표하는 경우는 드물었다”고 설명한대로, 이 자리는 강단사학계가 재야사학자들의 주장을 직접 듣고, 토론하는 사실상 처음 있는 자리였다.

토론회에서 국사찾기협의회 고준환 회장(경기대 법학부 교수)은 그 동안 국사학자들이 위서로 취급해 온 ‘환단고기(桓檀古記)’ ‘규원사화(揆園史話)’ 등을 재평가, 단군조선사를 기록한 중요한 사료로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최재인 국사광복회장은 만주대륙에서 발생한 동이(東夷)의 숙신(肅愼)족이 서남쪽으로 남진하여 황하문명을 건설했으며, 중국 동북지방의 문명은 숙신의 문화에서 중국 황하문명으로 이전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이라이트는 서영수(단국대) 서영대(인하대) 김성환 경기도박물관 학예연구관, 복기대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학예연구원 등 사회ㆍ토론자로 참석한 강단 사학자들의 비판과 반론이었지만, 워낙 인식 차이가 커서 양쪽의 의견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토론회를 준비한 박대재 국편 편사연구사는 “고조선사는 한국사의 서장이지만 시작을 어느 시기로 볼 것인가, 위치를 어디로 설정할 것인가 등 기본적인 시ㆍ공간 문제 등에서 이견이 많은 게 사실”이라며 “국사학계와 재야사학계의 시각차를 극복하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상고사의 틀을 세우기 위해 앞으로도 이런 자리를 계속 마련할 것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단군학회(회장 윤내현 단국대 교수)와 북한 조선력사학회가 ‘단군’과 ‘고조선’을 주제로 2002년부터 진행한 공동 연구의 성과를 모은 ‘남북 학자들이 함께 쓴 단군과 고조선 연구’(지식산업사 발행)도 눈여겨볼만하다.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 김정배 고구려연구재단 이사장, 윤 교수, 이형구 선문대 교수, 정영훈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등 남한 학자 7명의 논문 9편과 허종호 조선력사학회장, 손영종 사회과학원 연구사, 김유철 김일성종합대 교수 등 북한 학자 14명의 논문 22편을 담은 이 책은 단군릉까지 복원해 가며 단군조선사를 정사(正史)로 기술하고 있는 북한 주류 역사학계의 고대사 인식을 엿볼 수 있어 의미 있다.

물론 연구자들은 근거하는 사료나 관점에 따라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적 실체를 제 각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북한의 손 연구사는 ‘단군조선의 성립’이라는 논문에서 ‘삼국유사’ 등 사료와 단군릉 발굴 등 고고학적 성과를 근거로 단군조선의 건국연대를 기원전 30세기 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남한 주류학계의 단군 인식을 소개한 글에서 정영훈 교수는 “기원전 24세기 (고조선) 건국설에 동조하는 사람은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고 했다.

결론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연구자들은 “단군의 건국으로부터 민족사를 서술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을 같이했다”고 의의를 새겼다

김범수 기자 bskim@hk.co.kr

■ "中, 고조선에 문화 이식" 왜곡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 발해뿐 아니라 우리 역사의 출발인 고조선사까지 중국의 역사로 왜곡하고 있다.

조법종 우석대 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중국의 일부 학자들은 조선(朝鮮)이라는 명칭의 기원을 중국의 태양숭배신화인 탕곡(湯谷)신화와 여러 사서에 등장하는 명이(明夷)라는 표현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단군신화도 중국신화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본다.

또 기자동래(箕子東來ㆍ주나라 무왕이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왕이 되자 그를 섬길 수 없다면 현인인 기자가 조선으로 피난갔다는 내용) 설화에 근거해 기자조선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면서, 기자조선은 주(周)와 진(秦)을 황제의 나라로 섬긴 해외의 속국이었고, 이어 위만조선은 한(漢)의 속국이었다가 한 무제의 조선 공략으로 한의 변경이 되었다고 설명한다.

기자조선이 있으므로 위만조선이 있고, 또 한의 4군이 되었으며 그것이 고구려사와 발해사로 연결되므로 기자조선이 바로 중국 동북사의 개시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자동래설은 중국이 가장 우월한 민족이라는 내용을 담은 대표적인 기록인 ‘상서대전(尙書大典)’ 등에 등장하는 것으로, 사료의 편향성 때문에 기자의 실존까지 부정되는 형편에서 기자동래라는 가공의 상황을 통해 고조선에 중국문화가 이식되었다는 논리를 성립될 수 없다고 조 교수는 지적한다.

조 교수는 특히 고조선의 청동기문화가 고고학적으로 중국의 유물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중국 학계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범수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