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이 취임 한 달을 맞았다. 그는 지난 달 29일 민간주도 1기 위원회 출범식에서 “예술이 세상을 바꾼다”로 시작하는 선언문을 낭독했다.
1973년 이후 정부정책의 하부집행기관으로 존재해 온 문예진흥원 체제를 끝맺고 명실공히 현장 예술가 자율의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행정의 시대의 개막을 고하는 선언이었다.
-출범을 축하합니다. 선언문이 공격적이고 다분히 예술-지상주의적이던데요.
“모든 국민이 그 같은 믿음으로 예술을 인식 향유해야 하고, 위원회 역시 그런 의지로 지원사업을 펼쳐나가야 한다는 의미지요. 과학도, 정치ㆍ경제도 있지만 문화도 세상 변화의 중요한 요인입니다. 훌륭한 창작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가해야 하고, 또 그렇게 해왔습니다.”
-처음 생각하신 것과 많이 다를 것 같은데.
“일이 의외로 넓고 깊고 무겁습니다. 다른 장르가 모였고, 각 장르마다 서울과 지방, 주류와 비주류, 정통과 프린지(변방)가 있지 않습니까. 위원회는 합의제입니다. 하지만 ‘고집’ 하면 예술가들 아닙니까. 좋게 말해 개성이지요. 하지만 민간위원회의 ‘대의’에 대한 굳은 동의가 있지요. 잘 될 겁니다.”
-이것 저것 손 댈 일이 많을 텐데요.
“1기 민간위원회의 비전과, 중장기적 사업전략 수립을 토의 중입니다. 하드웨어 손질도 필요합니다. 우선 현 4실4개관 체제의 사무처 슬림화를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중복되고 분산된 업무를 체계화하는 겁니다. 가령 기획조정실을 기금확충과 사업정책 기획을 전담하는 ‘브레인’으로 두고, 회계나 인사 등은 다른 실로 넘기는 식입니다. 극장과 미술관의 운영 효율화도 고심하고 있습니다. 아예 경영 독립이나 전문예술경영인 영입 방안도 있겠지요. ”
-당장 소위원회 구성이 시급하지 않습니까.
“우선 5~15명 선으로 구성되는 5개(문학, 시각, 공연, 전통, 다원) 소위를 꾸릴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전문위원회’ 명칭이 어떨지, 그만큼 전문성이 강화된 형태가 돼야겠지요. 현장의 의견을 수렴하고 사업을 공모ㆍ운영하는 실무를 담당하게 됩니다. 별도로 기능별 소위원회를 둘까 합니다. 당장 급한 것이 ‘지역문화지원 소위원회’입니다. 지방에 산재한 문예회관 등을 콘텐츠 부족으로 놀리고 있지 않습니까. 창작주체와 향수자를 매개하는 기능, 이를테면 큐레이팅이나 기획, 출판 등을 활성화하면 창작에도 자극이 되고 전파ㆍ보급 효과도 배가할 수 있지요.”
재임 중 이루고 싶은 소망으로 ‘순수예술 케이블TV’를 들었다.
“일전 일본에 갔더니 NHK에서 연극을 두어 시간 방송해주는 겁니다. 우리도 유선방송 출범 초기 유사한 채널이 있었는데 문을 닫았고, 최근 스카이라이프 ‘아르테TV’라는 게 생겼습니다만. ‘손해 나도 좋다’는 식으로 기초예술을 전문적으로 소개하는 방송이 필요해요. 방송은 기초예술의 매개자입니다. 국민들은 문화향수의 기회가 늘어나고, 예술인들에게는 창작 발표의 기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는 위원회 산하 예술정보관에 시인들의 자작시 낭송을 녹화하도록 지시했다.
“대학 다니던 50년대 후반에 T.S.엘리엇의 자작시 낭송 음반을 들었어요. 칠레의 파블로 네루다 기념관에 가면 육성 시낭송CD를 팔아요. 조병화 문학관에 그런 게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어요. 고급 문화산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루고 싶은 일’에 대한 세 번째 대답이 이어졌다.
“젊은 문인들이야 책 내기 쉽지만 작고 문인이나 원로들의 전집 작업에는 구멍이 많지요. 개화기까지는 그런대로 돼 있고, 근년 작가들도 전집들이 있지요. 그 사이가 우리 현대문학의 구멍입니다. 송욱 손창섭 장용학 마해송 전집도 없지 않습니까. 내년쯤 출판사를 공모해 사업을 시작할까 합니다. 출판사도 비용을 부담하는, 일종의 매칭펀드 형식으로. 또 현재의 우수문학도서 선정ㆍ보급사업을 예술도서 전반으로 확산할 생각입니다.”
-결국은 돈이 관건일 겁니다. 지난 해 문예진흥기금도 폐지됐고…, 이미 기금 잠식이 시작됐다고 들었습니다.
“문예진흥기금 수입이 2003년 536억원이었어요. 그게 끊긴 겁니다. 대신 복권기금에서 500억원 정도가 지원돼요. 기금 운용수익은 금리 하락으로 5년 전보다 절반 가량 줄어 지난 해 284억원이었어요. 우리가 한 해 쓰는 돈은 1,000억원이 넘죠. 이대로 가면 현재 5,272억원인 기금이 5년 내 3,000억원 대로 내려앉습니다. 중ㆍ장기적으로는 선진국들처럼 국고 지원이 이루어지는 형태로 나아가야 합니다.“
분위기도 바꿀 겸, 첫 국정감사 경험을 물었다.
“처음이라 비교적 우호적이었습니다. ‘허니문으로 생각하라’더군요. ‘내년에 보자’는 의미의, 은근한 협박이잖아요. 갈 길은 멀고 질 짐도 태산입니다.”
그는 회갑년이던 1998년 후배 평론가와의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2급의 문학인-지식인’이라고 했다. “학자가 아니라 저널리즘적 비평가이고 교수가 아니라 기자 혹은 편집-발행자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창의적이고 오리지널한 두뇌가 못 되지요.”
그러면서 그는 “저 같은 두뇌나 직능도 필요하고 그것이 가장 필요한 시기와 장소에서 일을 맡아와 기쁘다”고 했다. ‘게으름의 행복’을 잘 알고 즐기는 그는 만년의 일복에 “죽을 맛”이라며 푸념하면서도, 얼굴은 드물게 밝았다.
김병익(金炳翼) 위원장은
1938년 경북 상주 생
1957년 서울대 문리대 정치과 입학
1965년 동아일보 입사
1967년 ‘사상계’로 등단
1968년 김현 등과 동인지 ‘68문학’ 활동
1974년 한국기자협회장
1975년 문학과지성사 출범, 대표 취임.
‘한국현대문학의 이론’(공저) ‘지성과 문학’ 등 비평집과 산문집 ‘한국 문단사’등 저서 다수.
대한민국 문학상(1991) 팔봉비평문학상(94) 국민훈장 모란장(96) 대산문학 평론상(97),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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