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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홍명보'를 되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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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실에서] '홍명보'를 되살리자

입력
2005.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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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공로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거스 히딩크의 지략과 카리스마, 선수들의 불 같은 열망, 그리고 국가 차원의 전폭적 지원이 어우러져 이뤄낸 위대한 기적이었다. 우리의 압축적 경제성장을 연상케 하는 2002년 월드컵에서의 도약은 그러나 그만큼 심각한 후유증을 낳았다.

이후 국가대표팀의 활약은 월드컵 4강의 추억에 함몰된 국민들을 만족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앞두고 벌써 움베르토 코엘류, 요하네스 본프레레 등 두 명의 감독을 갈아치웠고 이제 네덜란드의 딕 아드보카트를 새 사령탑으로 맞았다.

●허리는 조직의 안정ㆍ활력 역할

여론에 떼밀려 감독을 교체했지만 아드보카트의 국가대표팀이 독일월드컵에서 16강, 8강을 이루리라는 보장은 없다. 월드컵 4강 이후 한국축구의 추락 원인은 복합적이다.

감독의 역량도 중요하지만 선수 개개인의 열정, 지원시스템 등이 예전과 같지 않음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숱한 감독 교체, 선수 교체에도 불구하고 한국축구가 상승세를 타지 못하는 이유를 홍명보의 부재에서 찾고 싶다. 홍명보를 대신할 허리가 없다는 말이다.

1994년 미국월드컵 조별 예선리그 독일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펼친 활약으로 세계언론으로부터 ‘동양의 베켄바우어’라는 찬사를 들은 홍명보는 이후 2002년 한일월드컵 예선과 본선에서 천부의 리베로(libero)임을 증명해보였다. 최종수비수 역할을 하면서 적절하게 공격에 가담할 뿐만 아니라 매의 눈으로 전체 흐름을 조망하며 게임을 조율했다.

세계 올스타 경기에서 이탈리아 빗장수비의 대명사 파올로 말디니(AC밀란)와 함께 수비를 조율하는 홍명보를 두고 이탈리아의 해설자가 “마치 두 명의 말디니가 서있는 것 같다”고 한 것이나 일본의 자존심 나카타가 홍명보를 두고 “세계 최고수준의 선수다. 아시아에서는 비슷한 선수조차 찾을 수 없다”고 한 것은 말치레가 아니다.

홍명보가 대표팀의 코치로 돌아와 큰 힘이 되겠지만 아직 그를 대신할 선수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앞으로 그와 같은 선수를 발굴ㆍ양성하지 않는 한 아무리 유능하고 비싼 감독을 들여와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힘들 것이란 게 개인적 생각이다.

조선자기의 아름다움은 빛깔 조형 질감 등 여러 시각에서 발견해낼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도톰한 허리야말로 아름다움의 정점에 있다고 여겨진다. 인체에 비유하면 가느다란 목에서 출발한 선은 어깨를 거치면서 넓어져 허리부위에서 풍만함을 보이다가 서서히 좁아지며 편안하게 지면과 만난다.

조선자기의 풍만한 허리는 수수함과 넉넉함, 너그러움을 함께 느끼게 해준다. 풍만하면서도 부드러운 이 허리가 바로 아름다움의 원천이 아닐까.

모든 조직에서 허리는 핵심이요 요체다. 건축물로 말하면 기둥이요 대들보다. 공간적으로는 교량 역할을 한다. 허리가 탄탄한 조직은 안정되어 있으면서 항상 활력이 솟는다. 이런 철리(哲理)가 가장 실감나게 적용되는 데가 국가일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모든 분야에서 허리가 부실해 난리다. 빈부, 지역, 계층, 기업 등 거의 모든 분야로 확산된 양극화 현상은 허리의 부실화 또는 부재에서 발생한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양극화란 허리가 너무 잘룩해 극과 극이 서로 단절돼 있다는 뜻이 아닌가.

상류층은 정부의 세금폭탄과 투기차단 그물에도 불구하고 버틸 수 있는 힘이 있어 뵈고, 빈곤계층은 정부의 복지정책 강화로 배려의 대상에 포함돼 있지만, 가장 튼실해야 할 중산층은 이리저리 시달리며 세금 뜯기며 천대 받는 존재가 돼버린 느낌이다. 기업도 중견기업은 견딜 수 없고 지방의 중소도시는 희망을 잃고 있다.

●국가의 허리, 중산층 살려야

조세 부동산 복지 등 정부가 심혈을 기울이는 정책들이 중산층을 죽이는 결과를 빚는다면 아무리 취지가 훌륭해도 국가로선 불행이다. 우리 사회의 허리인 중산층이 부실해서는 기둥 대들보 다리 역할을 기대할 수 없다.

극과 극의 골을 메우고 단절된 곳을 이어주며 사회를 한 덩어리로 통합하는 기능은 아무래도 중산층이 해야 하는데 이 중산층이 소멸되어가는 듯해서 하는 얘기다.

방민준 논설위원실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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