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한 번 보기 어려운 대작이라 해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던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가 막을 내렸다. 9월 24일 ‘라인의 황금’, 25일 ‘발퀴레’, 27일 ‘지크프리트’에 이어 30일 ‘신들의 황혼’까지 나흘간의 대장정이 끝난 것이다. 공연 시간만 총 18시간에 이른 대작의 마지막 순간, ‘신들의 황혼’이 완전히 저물었을 때 객석의 박수와 환호는 아우성처럼 길게 이어졌다.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이 자체 프로덕션을 갖고 와서 선보인 이번 공연은 ‘니벨룽의 반지’ 한국 초연이라는 역사적 의의 뿐 아니라 전체적인 완성도 면에서도 잊지 못할 사건으로 남을 것이다.
지휘자 겸 연출가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무대 디자이너 조지 티시핀과 함께 만든 무대는 매우 단순하면서도 강력하고 효과적이었다. 공연 내내 등장하는 거대한 석상은 그 존재만으로도 두려움과 경외감을 자아내는 압도적 장치였다.
고대 거석 문화를 연상시키는 이 석상들은 공중에 떠 있거나 서거나 눕는 등 자세와 위치를 바꾸며 극의 전개를 암시했다. 다른 세트 없이 오직 이 석상들의 움직임으로 장면을 구성하는 방식에 대해 단조롭다는 비판도 없지 않지만,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무대를 뛰어넘는 시각적ㆍ상징적 강렬함이 더욱 두드러졌다고 본다.
이번 공연은 조명의 승리라고 할 만하다. 극의 흐름에 따라 색채를 달리 하며 펼쳐지는 빛의 향연은 황홀했다. 세부적인 면에서의 아쉬움, 이를테면 ‘라인의 황금’의 마지막에 보여야 할 신들의 요새 발할라 성과 무지개 다리, ‘발퀴레’에서 지그문트가 물푸레나무에 박힌 마법의 검(노퉁)을 뽑는 순간이나 군신 보탄이 창을 던져 지그문트의 노퉁을 부러뜨리는 순간, 용맹한 여전사들 발퀴레의 비행 등 하이라이트가 될 만한 몇몇 장면들이 시각적으로 전개되지 않고 넘어가는 바람에 어리둥절하거나 못마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 평점을 깎아 내릴 정도는 아니다.
게르기예프가 지휘한 마린스키 극장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좀 더 박진감 넘치고 작열하는 사운드를 기대했던 일부 애호가들로서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공연장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 너무 크고 오케스트라 피트도 좁고 긴 데서 오는 음향적 한계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 과격하면서도 강약의 대비가 뚜렷한 스타일로 잘 알려진 게르기예프가 예상과 달리 앙상블을 매우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 준 원인도 있다.
그러나 ‘라인의 황금’에서 사악한 난쟁이 알베리히가 지배하는 어둠의 세계로 내려갈 때, ‘신들의 황혼’에서 영웅 지크프리트의 죽음을 알리는 장송행진곡 등에서 들려 준, 심장이 터질 듯 격렬하고 웅장한 사운드는 이 오케스트라가 지닌 위대한 전통과 저력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가수들의 노래는 가수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체로 무난했다. ‘발퀴레’의 지클린데(소프라노 믈라다 후도레이)와 브륀힐데(메조소프라노 올가 사보바), ‘지크프리트’의 지크프리트(테너 레오니드 자코자예프), ‘라인의 황금’의 알베리히(바리톤 에뎀 우메로브), ‘신들의 황혼’의 브륀힐데(소프라노 올가 세르게예바)와 하겐(베이스 알렉세이 탄노비스키)은 훌륭한 열창으로 특히 많은 갈채를 받았다.
처음 이 작품의 한국 공연 소식이 들렸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선뜻 믿으려 들지 않았다. 흥행의 참패를 우려하는 소리도 들렸다. 하지만 공연은 이뤄졌고, 객석은 거의 찼다. 놀라운 일이다.
더 감탄스런 것은 이 어렵고 거대한 작품을 지휘, 연출, 무대, 가수에 이르기까지 100% 자국인의 힘으로 완성한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의 저력이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는 중앙아시아의 고대 스키타이 문명을 비롯해 아시아,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등 지구 전역에서 차용한 원시 문화의 야성적 흔적들이 무대 장치, 소품, 의상 등에 무리 없이 녹아 있어, 러시아가 바그너와 이 오페라를 독일의 것이 아닌 인류 보편의 유산으로 흡수해 자기화했음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100% 우리 힘으로 이 작품을 올릴 날은 언제 올까. 우리는 아직 ‘니벨룽의 반지’ 중 단 한 편도 전막 공연을 올려보지 못 했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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