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징가와 짱가, 아수라 백작, 요괴 인간, 헐크, 원더 우먼과 육백만불의 사나이, 배트맨, 엑스맨, 슈퍼맨, ‘애마 부인’의 안소영과 오수비, ‘뽕’의 이미숙…. 이들의 의미를 한 마디로 싸 안을 만큼 품 넓은 단어가 있을까?
거기에는 주특기나 힘, 선악의 이분법을 넘어, 한 시절의 열정 슬픔 분노 장엄한 카타르시스와 뼈와 살을 태우던 에로티시즘이, 또 세월에 마모돼 훼손돼 버린 600만불이라는 돈의 절대감 혹은 너절해진 성조기 속옷 세트 패션의 ‘원더’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감성의 바닥에 낙인처럼 찍혀 있는 격정의 아우라가 내포돼야 한다. 우상이니, 영웅이니, 스타니 하는 식의 단순화는 도무지 못마땅하다.
권혁웅 시인의 ‘마징가 계보학’은 그들 마징가들에게 뿌리를 댄 다양한 결의 감정들을 차용해, 지난 시간과 그 시간에 인연한 사람들을 노래한 시집이다.
이제 어른이 된 시적 화자가, 어리고 젊었던 날의 세계를 마징가들의 세계로 소환해 투사한, 이르자면 시간과 추억의 편린들이다. 도구적 관점에서 마징가들은 그 시절의 문화 코드이자 세대 의식의 아이콘이며, 멀지 않은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돕는 이정표인 셈이다.
시에서 그 시절의 이웃들은 곧잘 마징가들에 대비된다. “고철보다는 진로를 더 많이 모”으며 “지칠 줄 모르고 그릇과 프라이팬과 화장품을 창문으로 던”지던 “기운 센 천하 장사” 고철상과 그의 행패를 단숨에 눌러 버린 ‘그레이트 마징가’ 오방떡 아저씨(표제작), “프레쓰기가 손가락 둘을 먹어 버”려 떠나는 여자의 등 뒤에 “세 손가락으로 엿을 먹”이던 작은형이나 버스 “문틀에 끼어 왼손이 너덜너덜해진”, 그래서 “오라이라는 거, 쉽지 않은 말”임을 아는 막내 미정이는 세 손가락의 ‘요괴 인간’이다. 만화 영화에서 그들은 “늘 사람이 되고 싶다고 중얼거리던 이들”이다. 2대8 가르마의 이발사 ‘아톰’도 등장하고, 야광 X밴드를 매고 리어카를 끌든 청소부 ‘엑스맨’도 등장한다.
“…그의 정성 어린 비질을 기억한다/ 앞마당이 만들어낸 고운 물결 무늬는/ 누군가를 간절히 기다리던 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그는 아무 것도 버리지 않았다/ 아, 그러나 너무 많은 기다림, 너무 많은 부재는/ 그로서도 감당할 수 없었던 일,/ 어느날, 너무 무거워진 집이 그를 덮쳤다/…/종량제를 모르던 그의 그리움이/ 그렇게 어이없이 끝이 났던 것이다”(‘엑스맨’ 부분)
이들은 서울 성북구 동선동 달동네 주민들이다. 낙산 성북산 개운산 미아리고개를 ‘4대 명산’으로 알던 ‘나’가 세상을, 시적 감성을, 성적 환상을 키우고 부풀리던 ‘넓은 마당’ 같은 곳의 이웃들이다.
사막을 본 적 없는 ‘나’에게 모든 사막의 이미지가 관념일 뿐이고, “신발에 들어온 몇 알의 모래 알갱이”(‘신발에 담겨 있는 것’)가 현실이듯, ‘나’의 마징가들은 모두 구체적이며, “들숨과 날숨 사이, 거기 그렇게 있”는 ‘당신’들이다.(‘당신을 만지지 않아서 내가 노래하는 건 아니죠’) 그리고 어머니로 여겨지는 ‘그 여자’가 있다. “…동소문동에서 창신동까지/ 30킬로 그램 화장품 가방을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양 손에 쌀 백 근 나누어 들고/ 내 깔깔한 혓바닥에 벼이삭 심으러 오”던 여자.(‘떨어져나가 앉은 산 위에서’) 여자가 ‘나’의 혓바닥에 심은 것은 벼이삭 만이 아니라 이 모든 시의 씨앗일지 모른다. 그것은 시인의 원체험, 혹은 운명일수도 있다.
그 운명의 상징으로도 읽히는 ‘수상기(手相記)’ 연작 시편에서 시인은 “내 얼굴이 기억하는 네 안쪽은 늘 어두웠으니 여러 번 칼금을 그으며 불운한 바람이 불”었고, “네가 묻힌 낱낱의 지문은 네 부재에 대한 소소한 각주일 따름”(‘수상기1’)이며, “네가 붙든 그것이 바깥이어서, 너를 잡을 때마다 네 안은 우묵하게 오므라”들지만(‘수상기2’), “네 몸의 물관을 따라 오르는/… 그 잎에 닿기 위해/ 나는 이렇게 손을 뻗어”(‘수상기3’)본다고 썼다.
그 ‘넓은 마당’ 같던 달동네는 지금 아파트촌으로 개발 당하고 있다고 한다. 동네의 터줏대감이던 ‘기운 센 천하 장사’들은 일찌감치 떨려 났을 것이다. 매혹과 열정의 배후는 허망하고, 이미 허망해진 것들에 매혹의 이정표를 다는 일은 아이러니컬하다. 그의 시들이 슬프게 웃기고, 찡하게 마음을 죄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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