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여자를 높여 부르는 여사(女史)는 언제부터 사용한 말일까. 역사 소설이나 TV 역사 드라마에서는 쉬 찾아 보기 힘들지만, 3,000여년이나 묵은 단어다.
비빈(妃嬪)들이 황제나 왕과 동침하는 순서를 정해주는 일을 맡았던 여자 벼슬아치를 의미하는 말로 고대 중국에서 건너 왔다. 왕조 시대의 종말과 함께 생명력을 잃은 이 단어는 일본에서 여성 존칭어로 사용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같은 용도로 쓰이게 됐다.
말은 그 자체로 역사다. 생성과 소멸 과정을 거치며 시대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이를 후세에 전달한다. 수 천년 세월의 풍상을 견뎌내며 의미가 변치 않은 경우도 있지만, 여사처럼 변화하는 사회의 요구에 따라 쓰임새가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1995년 나온 ‘우리말의 나이를 아십니까’의 개정판인 ‘뜻도 모르고 자주 쓰는 우리말 나이 사전’은 오랜 역사를 지닌 말의 기원과 변천을 담고 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면서도 미처 몰랐던 말에 담긴 사연을 들춰 내고 그 유래를 보여 준다.
근대에 들어서나 등장했을 법한 ‘미장이’는 600여년의 연륜을 지니고 있고, ‘개평’의 평은 상평통보의 준말로 돈을 의미한다거나, ‘을씨년스럽다’는 을사조약이 체결된 을사년과 같다는 데서 비롯한 형용사라는 등 말에 얽힌 이야기가 읽는 재미를 던져 준다.
500여 개의 우리 말에 대한 촘촘한 설명을 읽다 보면, 김치나 국수를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는지, 감자나 귤은 어떤 경로로 유입되었는지도 알 수 있다. 말의 의미뿐만 아니라 역사를 담아낸 독특한 국어 사전이면서도, 풍부한 상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히 미니 백과 사전이라 부를 만하다. 단어들의 등장 시기를 명시하고 있어, 역사 소설을 쓰는 사람들이 자칫 저지를지 모를 시대적 오류를 예방하도록 도움을 준다.
가장 오래된 단어는 무엇일까. 책은 고조선 시대 불을 얻는 방법과 농사짓는 법을 가르쳐 준 고시(高矢)를 부르던 말인 고시네에서 유래한 ‘고수레’와 함께 ‘무당’ ‘굿’ ‘비녀’가 우리 역사와 함께 시작한 단어로 꼽고 있다. 엄밀한 역사적 검증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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