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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아름다움의 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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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아름다움의 발명

입력
2005.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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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출신의 여배우 그레타 가르보가 1920년대 할리우드를 처음 방문했을 때, 그녀는 가꾸지 않은 촌뜨기에 불과했다. 이중턱에 곱슬머리, 그리고 뻐드렁니를 갖고 있었다고 당시 할리우드 배우들은 증언한다. 속눈썹도 상당히 풍성했지만 하얀 색이어서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 그녀는 적절한 화장으로 자신을 변장했으며 그것이 효과를 거두자 할리우드의 딴 배우들은 가르보를 모방했다. 가르보 뿐 아니라 다른 배우들도 자신에게 맞는 화장을 통해 매력 포인트는 부각시키고 약점은 감췄다. 얼굴 좌우가 비대칭인 베티 데이비스는 마스카라의 도움을 받아 예쁜 눈을 한껏 뽐냈고, 진 할로우는 짙게 화장한 눈과 밝게 칠한 입술을 강조해 넓은 코를 가렸다.

그렇다면 영화 배우만 그렇게 했을까. 미국 여성 수백만 명이 그들을 곧 따라 했다. 평범한 여성들도 입술 모양을 내기 위해 립스틱을 찾았다. 심지어 여학생들도 립스틱 사용을 놓고 부모와 다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테레사 리오단이 쓴 ‘아름다움의 발명’은 신체의 아름다움을 가꾸려는 여성들의 욕구와 화장품, 속옷, 피부 관리 등 구체적 미용의 역사를 담고 있다. 여성들이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가슴, 피부, 허리, 손, 엉덩이 가꾸기는 물론 체모 제거 등에 얼마나 고심했으며 관련 도구들은 어떤 과정을 통해 개발, 발명됐는지를 소개한다.

그 같은 발명은 의외로 오랜 역사를 지닌다. 가령 고대 그리스인들은 폴데로스라는 식물의 뿌리로 뺨과 입술을 물들였는데 이것을 립스틱의 시조로 볼 수 있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그런 것들은 신체적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내고, 그래서 남성의 시선을 사로 잡고자 하는 여성의 욕구에 의해서만 이뤄졌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여러 사회ㆍ문화 현상이 상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가령 20세기 초 미국을 들썩였던 춤 바람은 신체 활동을 제약하는 코르셋 시장을 위축시켰고, 여성들이 손톱을 현란한 색채로 물들일 수 있었던 것은 자동차 산업과 함께 발달한 도료 산업이 미용 산업에 곧바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같은 기술이 체모가 적을수록 더 진화했다는 주장은 19세기 중반 등장했는데, 이는 유대 또는 아일랜드 여성이 평균적인 백인 여성보다 털이 더 많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 인종 편견주의의 반영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확산됨에따라 피부과 의사들은 떼돈을 벌었고, 1930~40년대에는 지르박의 유행과 나일론 개발 등으로 여성들이 더 적극적으로 다리 털을 제거하게 됐다.

미용 용품 발명의 과정에서 의학적 부작용도 있었고 사기도 있었다는 사실을 책은 빠트리지 않는다. 모든 질병에 대한 만병 통치약으로 선전된 전기 요법은 그 효과가 모호했고 눈썹 염색약과 제모 크림은 실명을 부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같은 시도들을 상세히 살핀 뒤 “(패션ㆍ미용 도구의) 발명은 사업가와 광고업자를 매개로 소비자와 발명가 사이에서 이뤄지는 끊임없는 대화의 산물”이라고 결론짓는다.

그 같은 전제 아래 그는 패션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린다. 그는 “여성들이 자연이 자신에게 준 원재료를 다시 만들고 가다듬기 위해 온갖 발명품들을 의식적으로 사용해 온 현상을 패션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며 “그 실상은 더 강한 자가 더 좋고 새로운 무기를 얻기 위해 무자비하게 투쟁하는 군비 경쟁과 다를 바 없다”고 평가한다.

그렇지만 저자의 주관적 가치 판단은 이 정도에서 멈춘다. 그는 아름다워 지려는 여성의 노력에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대신 화장품과 패션 용품은한 시대의 발명품이라는 대전제에서 그 기능과 과정을 담담히 소개할 뿐이다. 논쟁적인 책으로 꾸미고 싶지 않았다는 자신의 기본 노선에서 충실한 결과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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