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미식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Weekzine Free/ 음식 - 박재은의 음식 이야기 - 미식

입력
2005.09.29 00:00
0 0

‘미식’은 아름다운 식사다. 일본의 어느 작가는 ‘미식은 죄악’이라면서, 유럽의 최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그 사치스런 행복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만 결코 멈출 수 없는 축복이라 했다.

미식은 우선, 윤리적으로 죄다. 살아있는 거위의 입에 깔때기를 끼우고 옥수수를 들이부어 간을 살찌운 후 취하여 먹는 ‘푸아그라’가 세계적인 미식 메뉴고, 양의 뇌를 갈라 아직 따끈하고 흐물거릴 때에 카레로 양념을 해 떠먹는 것이 이름난 별미니까 말이다.

곰은 왼발로 벌통을 건드린다 하여 달고 약발(?)도 좋은 곰의 왼발을 푹 익혀 요리하는 중국의 고급 메뉴나, 사냥철마다 각종 날짐승으로 가득한 프랑스의 가을 시장을 보면 더 그렇다.

일본에서는 빙어 같은 작은 생선을 테이블용 작은 어항에 산 채로 풀어 넣고 젓가락으로 바로 집어 먹거나 소주잔만한 컵에 담아 후룩 마셔버린다. 우리도 겨울이면 서울 외곽을 따라 나가 접시 위에 튕겨나는 빙어를 초고추장에 곁들여 씹어 먹긴 하지만. 산

산 낙지나 탄력 넘치는 오도리를 산 채로 입 안에 넣어 으깨는 그 맛을 우리는 ‘별미’라고 부르지 않나. 우리의 혀는 길어야 세 치인데, 그 세 치를 기쁘게 하기 위해 인간은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윤리적인 측면에 있어 미식은 엄연히 죄다.

미식은 또 사회적으로도 죄다. 부의 분배가 극도로 불균형을 이루게 된 요즘, 굶어 죽는 이들은 아직 많은데 배를 불리려 먹지 않고 혀를 즐기려 먹는 다는 미식이 죄가 아니란 말인가.

캐비아를 올린 게살 무스를 오도볼로, 통통하게 살이 오른 랍스터를 전채로, 푸아그라 소스를 두른 어린 송아지 살을 메인으로 먹다가 디저트로 준비 된 ‘샤토 디켕(chateau d'yquem; 세계 최고의 디저트 와인)’을 훔쳐만 본다. 그리고 배를 반도 채우지 않고는 송아지를 남겨 버리는 일도 비일비재 한 것이 ‘미식’의 세계다. 최고의 와인을 맛보기 위해서는 배가 터질 듯 부르게 되는 일은 방지해야 하니까.

정말 같잖고 아니꼬운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미식’이 주는 죄책감이 요리의 맛을 더 돋운다는 것에 있다. ‘훔친 사과가 더 맛있다’는 카피를 예서 인용하면 좀 억지스러울지 몰라도 아무튼 좀 미안하고 비밀스러운 죄의식이 푸아그라의, 캐비어의, 달팽이의, 보신탕의, 샤토 마고 와인의 맛을 갑절은 맛있게 만든다.

게다가 대게 미식 메뉴라 인정받는 요리들을 보면 식재료의 희소성이나 그 싯가 때문에 한정된 수량만 맛볼 수 있는 것이 많다. 여기서 또 한번 맛은 상종가를 친다. ‘선택받은’ 느낌까지 더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미식’에 한번 발을 들이면 빠져 나올 수 없다.

그 은밀한 죄책감으로, 그 ‘선택 받은’ 듯한 우쭐함으로 한입씩 썰어 즐기던 사람에게 300원짜리 소프트 아이스크림 혹은 2,000원짜리 볶음밥을 먹으라 하면 병난다는 얘기다. 배부른 소리라고? 천만에, 미식은 오히려 배고픈 소리다. 굶어 죽어도 구걸은 못한다는, 삼각 김밥을 구겨 넣고 허기를 때울 바에는 차라리 굶겠다고 새침을 떠는 샌님들이 바로 ‘미식가’라는 그룹이다.

그런데 미식가들도 단계를 거쳐 진화된다. 일단 초보 미식가들은 갈 곳을 모르기 때문에 ‘남들이’ 맛있다는 메뉴부터 찾아 다닌다. 맛은 당장에 몰라도 느끼한 송로 버섯, 순도 99%의 씁쓸한 쵸코렛을 먹으며 자신감을 얻고 우쭐해 한다. 이는 와인 입문자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나름의 노하우가 없으므로 이름난 와인, 비싼 와인만 좇게 되는 거다. 그러다 갖은 맛을 다보고 자기 색깔과 혀 맛을 알게 되면 슬슬 ‘진정한 미식’을 시작하게 된다.

진정한 미식이란? 바로 제 입에 꿀맛, 제 눈에 안경인 메뉴들이다. 다시 말해서 남들은 하찮게 보는 패스트 푸드점의 아이스크림이 ‘피지’에서 따온 바닐라 빈을 쪽 긁어 만든 크림보다 내 입맛에 맞으면, 그것이 내게는 미식 메뉴가 된다.

프랑스산 최고급 선지로 만든 검정 소시지보다 경동 시장 리어카 순대가 내 입에 맞으면 그것이 곧 나의 미식 메뉴라는 말이다.

이쯤해서 사해 소금을 뿌린 송이버섯 구이 vs 부추와 볶은 버섯 잡채 이야기를 해 보자. 때마침 버섯이 제 철을 맞았으니.

모두 알다시피 송이버섯은 흔히들 말하는 ‘미식 메뉴’다. 귀하고, 그래서 비싸고, 그러니까 맛도 향도 끝내준다. 얇게 썰어서 질 좋은 소금을 빻아 톡 톡 뿌리면서 불에 구우면 숨어 있던 향기가 모두 올라온다. 그 향기, 그 감촉, 그 맛을 온 몸으로 느끼며 먹다 보면 그야말로 아름다운 식사가 무엇인지를 어렴풋 느끼게 될 정도.

그러나 송이버섯보다 훨씬 저렴한 새 송이버섯을 듬뿍 썰어 넣고 만드는 버섯 잡채도 매력이 있다. 도톰하게 썰어서 슬쩍 익힌 새 송이는 씹을 때에 ‘아작’할 정도로 결이 살아 있고, 함께 볶은 부추향이 푸릇하게 더해져 입 안을 만족시킨다.

그러니 송이 버섯이든 모둠 버섯이든 내 처한 상황과 입맛에 맞추어 즐길 수 있으면 둘 다 좋다. 송이에는 아껴먹는 맛이, 버섯 잡채에는 풍족하게 볶아 먹으며 느끼는 가을 맛이 있으니 비교하기 어렵다.

결국 미식은 죄악이지만, 진정한 미식은 내 멋에 살고 죽은 ‘아트’이기도 하다. 나의 세치 혀를 기쁨으로 바르르 떨게 만드는, 미식은 섹시한 아트다.

▲ 부추를 넣은 버섯 잡채

새 송이버섯 70그램, 팽이 버섯 50그램, 부추 45그램, 양파 1/2개, 홍고추 1개, 당면150그램, 간장 2/3큰 술, 설탕 1큰 술, 굴 소스 2 작은 술, 감식초 약간, 참기름 약간.

1. 당면은 슬쩍 삶아서 건져 둔다.

2. 팬에 기름을 두르고 채 썬 양파, 새 송이를 볶다가 당면, 팽이버섯을 넣고 볶는다.

3. 2에 간장, 설탕, 굴 소스, 식초로 간을 하고 부추와 홍고추를 넣는다.

4. 3에 참기름을 약간 넣고 다시 볶은 후 불에서 내린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