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으로서 국가적ㆍ사회적 의제 형성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경우는 대통령이라고 해야 한다. 여야 정치권이나 시민, 단체, 또 이를 반영하거나 자체적으로 의제를 제기하는 언론도 있지만 대통령의 의제 설정 능력과 기능은 이보다 더 크다.
대통령이 말하면 언론은 보도하고, 언론이 뉴스로, 논평으로 이를 전하면 국민은 알게 되고 평가한다. 대통령은 최고의 뉴스 메이커이다.
■그러나 대통령이 내놓는 의제는 항상 옳은가. 또는 대통령이 말하면 언제나 공중의 의제가 되는가. 때로 이는 별개일 수 있다. 미국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이 의제를 설정하더라도 언론이 전하는 데 따라 정 반대인 경우가 얼마든지 발생한다.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의 의회 연두교서를 토대로 한 1980년의 연구는 카터가 언론의 의제를 설정했다기보다는 언론이 카터의 의제를 설정했다는 사실을 밝힌다. 대통령 의제와 언론 의제 사이의 상관관계에 큰 편차가 있었다는 실증이다.
■반면 리처드 닉슨의 1970년 의회 연두교서를 연구한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언론이 대통령 의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의제를 언론이 따를 것이라는 통념을 확인한 것이다. 상반되는 두 연구 결과를 보는 학자들의 해석은 어느 경우든 “상황적 요소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의제는 대통령의 영향력이나 리더십 유형의 차이, 이슈의 적정성 여부 등에 의해 성립 여부가 판가름 난다는 설명이다. 빌 클린턴에 대한 연구 결과도 마찬가지다. 클린턴이 제기한 의제는 곧 언론이나 공중 의제로 여겨졌는데, 이는 클린턴이 대통령으로서 업무를 잘 수행한다는 믿음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기한 대연정 문제가 왜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외면당했는지도 이러한 이론으로 충분히 설명된다. 노 대통령은 그제 언론사 경제부장들과의 간담회에서도 대연정에 대해 설명하려 애썼지만 대통령 의제로서의 대연정은 사실상 소멸했다고 보는 것이 다수의 인식이다.
그런데도 청와대 홍보수석이라는 사람은 아직도 “언론이 비방만 하며 공론의 장을 마련해 주지 않았다”고 ‘의제 불발’의 탓을 언론에 돌리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지난 주 열린우리당의 상임고문단 모임에서도 연정 등에 대한 대통령의 진의가 문제시됐다고 한다. 여당이 대통령을 외면할 때 이는 심각한 현상이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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