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확보도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준비하던 1996년 당시,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월급도 못 받고 일하는 스태프들을 보다 못해 은행에서 500만원을 대출 받아 사비로 월급을 줬습니다.
그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제 1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준비하고 있는 김 프로그래머의 감회는 남다릅니다. “그 때는 영화제 상영용 필름도 일반 수입 영화처럼 일일이 검열 받아야 했고 세금도 많이 내야 했고…. 아무도 영화제가 뭔지를 몰랐고, 우리 역시 아무것도 모른 채 덤벼들었던 거죠.”
제 1회 때 초청팀 스태프로 부산국제영화제와 인연을 맺어 지금은 영화제 살림을 책임지고 있는 이소영 총무팀장은 일할 공간이 없어 이리 저리 이사 다녔던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예산 부족으로 마땅한 사무실도 얻지 못해 어떤 해에는 일년에 4번 이사한 적도 있다고 합니다. 쫓겨나다시피 한 후, 부산은행 대강당에서 부산 선거관리위원회 책상을 빌려서 일한 적도 있습니다.
비록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사무실이지만 이사 걱정 없는 지금은 정말 고마울 정도입니다. “난관에 처했을 때마다 늘 누군가 ‘짠’하고 등장해서 도와 주는 것 같아요. 그들의 도움이 모여 지금의 부산국제영화제를 만든 거예요.”
영화를 사랑해 매년 부산을 찾다가 2년 전부터는 영화제 스태프로 일하고 있는 이동욱씨에게 올해 영화제는 더욱 특별합니다. 지난 해에는 상영 필름의 문제 여부를 검사하는 스크린 매니저로 일했는데 올해는 직접 영사기를 돌리는 막중한 책임을 맡았습니다. “내 손으로 좋은 영화를 상영하고, 많은 이들이 그 영화를 보고 즐거워할 생각을 하니 너무도 짜릿한 거죠.”
회사원 윤지영씨는 올해도 영화제 참석을 위해 휴가를 냈습니다. 지난 여름 동료들이 휴가를 내고 저마다 해변으로 계곡으로 향할 때도 “10월에 부산영화제 가야지”라고 생각하며 휴가를 아꼈습니다.
매년 그렇지만 보고 싶은 영화 중 인터넷 예매에 성공한 작품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특히 기다리는 작품은 쓰마부키 사토시 주연의 ‘봄의 눈’인데 그 역시 예매하지 못했습니다. “해운대 메가 박스 임시 매표소에서 밤을 새워 현장 판매 티켓을 노려볼 생각”이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아주 특별한 사랑이 있습니다. 그 덕에 부산국제영화제가 10회를 맞았습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친구들 둔 이의 글이 있었습니다. 함께 영화를 보지 못해 아쉽고 친구에게 늘 미안했다고 합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청각 장애우를 위해 거의 모든 영화에 한글 자막을 넣었고, 시각 장애우를 위해 지문 녹음 영화 19편을 준비했다는 소식이 반갑다는 내용입니다. 부산국제영화제가 더 많은 사람들의 축제가 됐으면 하는 건 그 친구만의 바람은 아닐 것입니다.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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