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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북한주재 소련대사 카프토 회고록/ "90년 韓-蘇수교 직전 北, 핵무기 개발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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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북한주재 소련대사 카프토 회고록/ "90년 韓-蘇수교 직전 北, 핵무기 개발 위협"

입력
2005.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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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1990년 9월 30일 한국_소련 수교 직전 양국 수교가 이뤄질 경우 핵무기를 개발하고 핵무기비확산조약(NPT)을 탈퇴하겠다고 위협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동기 가운데 하나가 국제적 고립이었으며, 93년 1차 핵위기가 조성되기 전부터 이 같은 조치를 준비해왔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한_소 수교 후 첫 북한 주재 소련 대사였던 알렉산드르 카프토(재임기간 1991년 1월~1992년 3월)는 2003년 출간한 ‘삶의 교차로에서’라는 회고록에서 이 사실을 공개했다.

회고록에 따르면 1990년 9월 2일 수교 사실을 사전 통보하기 위해 평양을 방문한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당시 소련 외무장관은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을 거부당했으며, 방문 둘째 날 김영남 외교부장은 셰바르드나제 장관 면전에서 한_소 수교에 따른 비난성명을 낭독했다.

이 성명에는 소련이 북한과 맺은 약속을 위반했다는 것과 이에 따른 북한의 강력한 대응 방침이 담겼다. 북한은 1986년 10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양국 고위급 회담에서 “어떤 경우에도 한국에 대한 소련의 입장을 바꾸지 않겠다”고 언급했고, 셰바르드나제 장관도 같은 해 12월 평양에서 “한국과 정치외교 관계를 맺을 의향이 없음은 확고하다”고 한 것을 소련의 약속 위반 사례로 제시했다.

북한은 한_소 수교로 1961년 7월 체결한 ‘조소(朝蘇) 상호원조조약’의 ‘모든 국제문제에서 양국은 협의한다’(제3조)는 규정을 소련측이 위반한 만큼 협정은 파기된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협정 파기로 인해 자력의 길을 찾아야 하는 만큼 핵무기 개발과 함께 1985년 가입한 NPT에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북한은 또 38선 획정으로 남북이 분단된 책임을 소련도 미국과 함께 져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소련이 동맹관계를 헌신짝처럼 내팽개쳤기 때문에 소련연방에서 독립하려는 공화국들을 승인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일본과는 외교관계 수립에 나서는 한편 위해 북방 영토분쟁에서 일본측을 지지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소련에 대해 전방위 위협을 가했다.

셰바르드나제는 당시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이 불발되자 “외교관 경력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겪은 모욕이었다”며 주 북한 대사에게 수교 사실을 대신 통보하도록 했어야 했다고 후회했다.

카프토는 회고록에서 1991년 1월 1일 정식 대사 부임을 앞두고 김정일 주석에게 전할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친서를 전달 받았는데, 이 서한에는 김일성에 대한 칭송 일색이었다고 전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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