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치 포인트’로 지난 칸영화제를 찾았던 우디 앨런은 “내가 원하는 제작자는 봉투에 돈을 담아 주고 영화가 완성될 때까지 일체 간섭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했다.
뉴욕을 심각할 정도로 사랑하는데다 비행기 공포증까지 있는 그가 제작비를 찾아 영국까지 날아가 ‘매치포인트’를 찍은 것을 보면 천하의 우디 앨런도 영화계의 산업적 요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늘 자신의 불행과 편집증적 불안감을 영화의 소재로 활용하는 우디 앨런에게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차선의 선택을 의미한다. “영화를 찍고 나면 현실의 복잡한 일이 밀려와 또 다시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고 그는 말하는데 즉, 현실의 불안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영화라는 덜 불안한 대안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개봉 예정인 2002년작 ‘헐리우드 엔딩’에서 그가 연기하는, 아카데미상을 2번이나 수상했으나 지금은 탈취제 광고도 제대로 찍어내지 못하는 한물 간 영화감독 발 왁스만은 우디 앨런처럼 영화를 찍을 때도 찍지 않을 때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전 부인이자 지금은 할리우드 대형 영화사 사장의 약혼녀인 엘리(테아 레오니)의 후원으로 제작비가 6,000만불 규모인 흥행대작의 연출 제안을 받고 고민한다. 현실을 벗어나려 자존심을 구긴 채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이번에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일시적으로 눈이 멀어버린다.
눈 먼 영화감독이라는 어이 없는 설정은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끊임 없이 만들어낸다. 중국인 통역사의 도움을 받아 겨우 영화를 찍어 나가고 결국 엘리마저 그에게 동조하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진다. 제작자를 만나는 장면에서 출입문과 소파 사이의 거리를 짐작키 위해 미리 세어 둔 스탭 수가 어긋나면서 그가 보여주는 엎어지고 부딪히는 슬랩스틱식 코미디는 관객의 웃음보를 터뜨린다.
“LA에 살면 감각이 자연 무뎌져”라며 뉴욕에 대한 여전한 사랑을 내보인다던가 “평론가는 문화의 기생충” “카네기홀에서 하는 게 정말 공연이지, 전자음악은 정전되면 아무것도 못해” 등 예의 예민하고 신랄한 대사를 날리기도 하지만 ‘헐리우드 엔딩’은 영화 속 발 왁스만처럼 나이 들고 지친 우디 앨런의 영향인지, 툭 쏘는 날카로운 맛은 덜하다.
‘헐리우드 엔딩’이라는 제목처럼 주인공의 결말은 이렇다. 썩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그럭저럭 기본은 한다. 눈 먼 감독이 만든 엉망진창의 영화는 흥행에는 대참패하지만 프랑스 평단으로부터는 “왁스만은 50년 만에 등장한 미국 천재감독”이라는 극찬을 듣는다. 30일 개봉. 15세.
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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